유럽 가스 공급원으로 뜨는 아프리카·구소련권, 러 공백 메운다

입력 2023-09-20 08:56   수정 2023-09-20 11:40



아프리카와 구소련권 국가들이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유럽 가스 공급량 절반 가량을 차지하던 러시아의 빈자리를 메우면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에너지 지도가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러시아 가스 끊기자 수출 늘리는 알제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시간)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새로운 공급원을 찾으면서 콩고 연안에서 아제르바이잔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세계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유럽 에너지회사들은 알제리·콩고·아제르바이잔 등에서 천연가스 공급을 늘리고 있다. 이탈리아 에너지회사 에니는 최근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약 800㎞ 남동쪽에 위치한 비르레바 지역에서 수십 개 유정을 시추해 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알제리산 가스를 자국 내에서 소비하는 데서 나아가 오스트리아, 독일 등 중부 유럽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한때 알제리는 이탈리아에 가장 많이 가스를 수출하는 나라였으나 그 자리를 최근 수년 간 러시아가 대체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알제리를 이전 지위로 되돌려놓고 있다. 알제리 관료들에 따르면 올해 알제리는 천연가스 1000억㎥를 유럽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는 전쟁 전인 2021년 유럽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천연가스 양의 약 65% 수준이다.

에니는 콩고에서도 천연가스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에니는 수십년 간 콩고 해상 유전에서 석유를 캐낸 뒤 여분 천연가스를 해저 저장소에 보관해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천연가스 수요가 치솟자 에니 경영진은 이 천연가스를 액화해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지난해 8월 벨기에 해운회사인 엑스마르로부터 특수목적선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영국 최대 석유회사인 BP(브리티시페트롤륨)는 구소련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BP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카스피해에서 가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샤 데니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제라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약 100㎞ 동쪽에 있는 ACG 유전에서 가스를 추출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100억㎥인 아제르바이젠 가스 생산량을 2027년까지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인도·중국 찾는 러시아, 미국·아프리카와 연대하는 유럽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 에너지 지정학을 뒤흔들고 있다. 러시아는 석유·천연가스 수출을 위해 유럽 대신 중국·인도와 손잡았고, 유럽은 미국과 아프리카·구소련권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전쟁 전 러시아의 최대 에너지 수출 지역은 유럽이었다. 러시아 석유의 45%, 천연가스 대부분이 EU(유럽연합)에 팔렸다. EU 역시 전체 가스 수입량의 45%를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전쟁으로 유럽 수출길이 끊기자 러시아는 대안을 찾았다. 바로 인도와 중국이다. 이들은 서방 제재로 헐값이 된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대거 사들였다.

반면 유럽은 미국산 천연가스로 러시아의 부재를 메웠다. 지난해 유럽은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을 전년 대비 144.3% 늘렸다. 모자란 부분은 노르웨이(8.5%)와 알제리(15.7%), 아제르바이잔(17.6%) 등에서 수입해서 메웠다.

무기거래 등을 통해 맺어진 러시아와 아프리카·구소련권 국가의 외교관계도 지정학 앞에서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알제리는 러시아산 군사 장비를 가장 많이 사는 나라 중 하나다. 여러 세대에 걸쳐 알제리 장교들이 러시아에서 군사교육을 받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은 이러한 알제리와 러시아의 관계를 멀어지도록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알제리에 러시아·이란·북한 제재에 따라 러시아에서 상당한 양의 무기를 구매하면 미국 제재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한 관료는 "우리는 알제리가 러시아 국방 구매에서 벗어나 다각화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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