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은 한 때 '반도체 제국'으로 통했다.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제시한 고든 무어가 로버트 노이스와 1968년 인텔을 공동 창업하면서 성장했다. 앤디 그로브가 인텔의 세 번째 직원으로 합류했고 이후 인텔 CEO를 맡으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제국의 명성은 흔들리는 중이다. 삼성전자 TSMC 엔비디아 등에 밀린 결과다.
절치부심한 인텔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TSMC, 삼성전자 등이 주도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술 경쟁에 본격 가세했다. 1.8나노미터(㎚·1㎚=10억분의 1m)급 반도체 웨이퍼 시제품을 공개하는 등 기술력을 과시했다.
인텔은 19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연 ‘인텔 이노베이션 2023' 행사에서 1.8㎚ 반도체 생산 준비를 2024년 하반기에 완료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회사는 1.8㎚ 반도체를 18A 공정에서 양산할 계획이다. 인텔 18A 공정은 '리본펫'이라고 부르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활용한다. ㎚는 반도체 선폭(회로의 폭)을 뜻하는데, ㎚ 앞에 붙은 숫자가 작을수록 고성능·저전력·초소형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삼성전자와 TSMC 등은 치열한 ㎚ 경쟁에 나선 상황이다. 두 회사는 2025년에나 2㎚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인텔은 이에 앞선 2024년에나 생산한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파운드리 기술력으로 삼성전자와 TSMC를 압도하겠다는 의미다. 이날 행사에 단상에 오른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Arm과 에릭슨의 칩을 인텔 1.8㎚ 공정을 활용해 생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텔은 지난 6월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 행사를 통해 “내년에 파운드리 ‘세계 2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했다. 핵심 전략은 ‘내부 파운드리 모델’이다.
칩 개발·설계 부문과 파운드리사업부(IFS)의 회계를 분리하고, 내부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매출도 IFS 실적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외부 고객사 매출까지 더하면 현재 2위인 삼성전자를 제칠 수 있다는 게 인텔의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파운드리 매출은 200억~220억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CPU 경쟁력을 앞세워 ‘반도체 제국’으로 군림한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 등으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 인텔은 대규모 데이터 학습·추론용 인공지능(AI) 가속기 제품인 '가우디2'도 선보였다. 생성형AI 등장으로 커지는 AI 가속기 시장을 정조준한 제품이다.
인텔의 이 같은 공언에 회의적 반응도 적잖다. 이 회사가 1.8㎚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ASML의 차세대 극자외선(EUV) 장비인 '하이 NA'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텔이 아직 이 장비를 도입하지 않은 데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장에서 생산할지도 밝히지 않아서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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