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외교 기능을 배제한 채 차관급 외청으로 출범할 가능성이 높아진 우주항공청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국방·외교 기능이 없는 우주청은 쓸모가 없다’ ‘공무원 자리만 늘어난다’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9일 연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여야는 우주청을 차관급으로 두는 방안에 대해 합의했다. 하지만 우주업계가 강조하고 있는 국방·외교 업무를 포함할지는 논의되지 않고 있어 ‘반쪽 우주청’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주청 신설 특별법을 둘러싼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외청이 적절한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한국천문연구원·국방과학연구소(ADD) 등을 우주청과 별도로 존속시키는 게 합리적인가 등이다.
국무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차관급 외청장으론 우주 관련 부처(외교·국방·국토교통부 등) 협력을 끌어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다. 외교부는 올해 들어 우주 관련 업무를 담당할 국제기술규범과를 신설했다. 인공위성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국방부는 내부적으로 육·해·공군 사이 우주 관련 주도권 다툼이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신명호 항우연 책임연구원은 “과기정통부 산하 우주청은 이런 중차대한 국방 외교 통합 조정 능력이 전혀 없다”며 “부처 간 총괄 조정이 우주전담기구가 가져야 할 가장 핵심 기능이라는 데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정반대로 갔다”고 지적했다.
항우연과 천문연구원을 우주청과 별개로 존속시킨다는 과기정통부 방침도 논란이다. 특별법은 과기정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 사무가 흩어져 있는 우주개발진흥법, 천문법, 전파법 등을 우주청으로 일원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과 조직 운영 방침의 지향점이 제각각인 셈이다.
우주업계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벤치마킹해 우주청을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비상설 자문기구인 국가우주위원회를 장관급 위원장이 맡는 상설 기구로 격상하고, 그 아래 사무국으로 우주전략본부(우주청)를 두고 ADD, 항우연 등 우주 개발 기관을 모두 묶는 ‘빅텐트’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 대통령 직속 기관인 항공우주국(NASA)은 백악관이 직접 컨트롤한다. 백악관이 NASA의 예산 규모를 정하고, 주요 우주계획 입안 때 대통령이 직접 의회를 설득하거나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한다. 다른 부처보다 위상이 높은 특수 기관이란 뜻이다. 미국이 옛 소련에 한때 뒤졌던 우주 기술을 비약적으로 높인 배경엔 이런 정부 편제가 있다.
우주정보 포털 스페이스레이더의 박시수 대표는 “NASA는 다른 행정부에 속하지 않는 완전한 자율기관으로 권한과 지위 측면에서 한국 우주청과 큰 차이가 있다”며 “NASA와의 협력은 동일한 위상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우주청으론 NASA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7일 소형 달 착륙선 ‘슬림’을 발사한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JAXA 설립 이전 일본의 우주개발 주체는 문부과학성, 과학기술청, 독립법인 항공우주기술연구소 등으로 난립했다. 2003년 일본은 우주개발 기구를 통합해 JAXA를 설립하는 1차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각 부처에서 파견된 관료들이 원 소속 부처를 위해 각개약진하며 문제가 됐다. 이에 2008년 우주기본법을 제정하는 2차 개혁을 단행했다. 내각부에 일본 우주개발 관련 최상위 기관인 우주개발전략본부를 설치하고 총리가 이끌게 바꿨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난 15일 미국이 신설하기로 한 ‘주일 미 우주군’이 JAXA, 항공자위대 우주작전군과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우주와 국방, 외교가 한 몸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우주 스타트업 나라스페이스의 박재필 대표는 “해외 우주 기관들과 교류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각 나라 우주청이 굉장히 기민하게 자국 자원을 해외와 연결하는 모습이었다”며 “우주청은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 기업들의 역량을 대변하고 기회를 찾아낼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성/김진원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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