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일본, 만성 디플레 탈출했나②에서 계속
최근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디플레이션 탈출과 출구전략의 시점을 언급하고 있다. 그때마다 일본은 물론 전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였다.
포문을 연 것은 다무라 나오키 일본은행 심의위원이다. 심의위원은 일본은행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정책위원회를 구성하는 9명 중 1명이다. 다무라 위원은 지난 8월30일 강연에서 "일본은행의 목표인 임금인상을 동반한 지속적인 물가상승률 2%의 실현이 확실히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시장이 물가 목표의 실현 시기에 대한 언급을 주목하는건 디플레 탈출과 출구전략으로 이어지는 수순의 첫단계여서다. 메가뱅크 출신인 다무라 위원은 정책위원회 멤버 가운데 가장 출구전략에 적극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다나카 하지메 심의위원도 9월6일 강연에서 "(물가목표) 실현의 싹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1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 총재가 불과 1년 전인 2022년 9월22일 기자회견에서 "적어도 2~3년간은 대규모 금융완화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에 비하면 일본 경제를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출구전략의 시점과 관련해 정점을 찍은 인물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다. 우에다 총재는 9월 9일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해제 시점에 대해 "경기와 물가가 상승해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이후에도 2% 물가 목표를 안정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해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제 시점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연말까지 내년 초 임금인상 동향을 포함한 관련 정보와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제로(0)'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금융시장에서 우에다 총재의 발언은 일본은행이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일본의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도 지난 10년간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시간 벌기'로 평가하며 출구전략의 시점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니시무라 장관은 9월19일 기자회견에서 "통화 완화는 일본이 성장 전략과 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성장 기로로 돌아갈 시간을 벌기 위한 정책"이라며 "인플레 상황을 고려할 때 (통화완화 정책은) 결국 끝나고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금융시장은일본 정부가 언제 디플레 탈출을 선언할 지 주목하고 있다. 디플레 탈출 선언은 일본이 10년 동안의 대규모 금융완화를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출구전략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졌음을 공인하는 통과의례다.
일본은행은 7월말 장기금리를 사실상 1%까지 인상했다. 출구전략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면서도 대규모 금융정책을 유지하는 모순적인 정책이었다. 물가와 엔저(低)를 잡으면서 경기도 부양해야 하는 일본은행의 고육책으로 분석된다.
디플레 탈출을 선언하면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디플레를 벗어나고 있지만 디플레를 탈출한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모순적인 재정·통화정책을 계속하기 어려워 진다. 세계 유일의 마이너스 금리 국가 일본이 정상 국가로 전환한다는 뜻이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출구전략에 나서면 금리가 사실상 '제로(0)'인 엔화를 빌려 고금리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히 청산될 가능성이 높다. 작년 말 기준 일본 투자가들은 531조엔(약 4823조원)어치의 해외증권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투자가는 미국, 영국, 아일랜드, 호주 등 주요국 채권시장의 최대 큰 손이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 4월 발표한 국제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일본은행이 금융완화를 조정하면 호주와 유럽연합(EU), 미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자금유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다. 금리 상승으로 엔화 가치가 오르면 일본 수출 대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진다. 한국 기업의 세계 시장 전략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로 경쟁하는 한일 관광산업의 판도도 바뀔 수 있다.
일본 경제가 만성 디플레를 벗어났는지, 일본 정부가 디플레 탈출을 선언할 지에 세계 금융시장이 주목하는 이유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