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서 민주당이 극심한 당내 혼란 상태에 빠졌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이 '가결' 투표한 민주당 의원들을 색출한다며 혈안이 된 가운데, 민주당은 새로운 원내 지도부 선출 작업을 시작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는 박광온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가 국회 표결 이후 겨우 반나절 만에 총사퇴하면서 사실상 '비명계의 반란은 진압됐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만 최소 29표의 가결표가 나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분당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은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95명에 찬성 149명, 반대 136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에서 가결표가 29표 이상 나온 것으로, 기권과 무효까지 합치면 39표의 '이탈표'가 나온 셈이다. 원내지도부가 나서서 표 단속에 나섰지만 실패하면서, 비명계와 친명계 양쪽에서 모두 분당 가능성을 시사하는 말이 나오고 있다.
친명계 의원들은 가결표를 행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당내 의원들을 향해 사실상 '민주당에서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체포동의안 가결 다음날 열린 최고위원회의는 이같은 친명계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했다. 친명계 의원들의 날이 선 발언이 이어진 가운데, 비명계인 송갑석 최고위원은 최고위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비명계 의원들을 향해 살벌한 경고를 날렸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권 검찰 독재 정권의 정적 제거, 야당 탄압 공작에 놀아난 건 용납할 수 없는 해당 행위"라며 "상응하는 조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정 최고위원은 단식 투쟁 중인 이재명 대표와 공석이 된 원내대표를 제외하면, 당내에서 가장 권력 승계 서열이 높은 인물이다.
그는 가결 표를 던진 의원들을 친일파에 비유하며 "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먹었듯이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 적과의 동침"이라며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친명계 박찬대 최고위원도 가결표를 찍은 의원들을 향해 "배신과 협잡, 구태 정치에 수많은 당원과 국민이 분노한다"며 "익명에 숨는다고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친명계 서은숙 최고위원 역시 "내부의 적부터 조치해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지붕 아래서 계속 지지고 볶고 국민들한테 아주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느니 오히려 유쾌한 결별을 통해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민적 심판을 받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민주당 내 갈등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언급하며 "이 정도 사안(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고 해서 분당을 운운하는 것이 섣부른 것"이라면서도 이같이 말했다.
이원욱 의원은 이재명 대표 등 지도부를 향해 책임론을 제기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YTN 라디오에 출연해 이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고 본다며 "책임져야 할 사람은 가만히 있고 오히려 책임이 약한 사람한테 모든 것을 떠넘긴다. 책임져야 할 사람은 이 대표를 비롯한 기존의 지도부"라고 말했다. 그는 박광온 원내대표가 사퇴한 것에 대해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매우 당혹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의원은 이 대표가 표결 직전 부결 호소문을 낸 것에 대해 "그것이 굉장히 역풍을 맞았다. 이 대표와는 같이 못 하겠다는 이야기들이 의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회자가 됐다"며 "나를 부결시켜달라고 하는 메시지가 나오니까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삼삼오오 오고 갔다"고 전했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분당'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표결 직전 '부결'을 호소하면서 역효과가 나긴 했어도,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이 견고하고 당내 세력 역시 건재하다는 게 그 이유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분당 가능성은 제로라고 본다"며 ▲가결파를 이끌 만한 용기 있는 리더가 없고 ▲총선 공천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비명계 의원들이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내가 왜 가결표를 던졌고, 앞으로 어떻게 이 당을 수습하겠다, 어떻게 총선을 이기겠다는 그런 자기 생각과 비전을 이야기 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는다"며 "최악의 정치는 비겁한 정치다. 용기 있는 리더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지금 우리 당은 시스템에 의해 공천하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현역들이 하위 20% 평가에서 포함되지 않는 한은 누구에게나 경선 기회를 주게 되어 있다"며 "비명이기 때문에 경선을 안 시키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당 가능성은 제로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다만 또 다른 한 정치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제1야당 대표가 검찰의 영장 청구 직전에 단식하고, 체포동의안 통과 이후에도 사퇴하지 않는 것을 누가 예상했겠느냐"며 "기존의 정치 문법이 계속해서 맞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분당 가능성 역시 열어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친명계는 '누가 누 더 충성하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눈엣가시인 비명계 의원에게 어떤 '보복'을 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새로운 원내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당이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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