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 주요국들은 경쟁적으로 ‘넷제로’(탄소중립)를 정책 목표로 내걸었다. 대중이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대의명분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1년 “탄소중립 달성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감내해야 할 불편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넷제로를 덜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의 ‘예언’은 현실이 되고 있다. 탄소중립을 법제화하면서까지 앞장섰던 스웨덴이 방향을 선회한 것은 다른 주요국에 ‘탄소중립 숨고르기’를 위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세계 각국은 2015년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막자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합의했다. 이후 각국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시간표를 제시했다. 미국과 영국 등 대부분의 나라는 자국의 탄소 순배출량을 없애는 시기를 2050년으로 설정했다. 스웨덴은 2045년을 목표로 제시하고, 2017년 세계 최초로 이를 법제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는 전날 발표한 2024년 예산안으로 기후변화 대응에서 한발 물러섰다. 내년 기후 대책 관련 예산안을 2억5900만크로나(약 310억원) 삭감하고, 유류세 감면 등으로 내연기관 자동차를 타는 국민의 지갑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이는 내연기관차 교통량을 늘리고 친환경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을 늦춘다는 점에서 반(反)기후적 조치다.
스웨덴 정부는 “예산안에 명시한 19개의 기후변화 대응 목표 중 운송 부문 탄소 배출량 감축 등을 포함해 7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시한 내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다는 점을 시인했다. 작년 출범한 스웨덴 우파 정부는 올해 8월엔 “기후변화 대응책의 일환으로 신규 원자로 10기를 더 짓겠다”며 43년 만에 탈(脫)원전 기조를 철회했다. 탄소 배출이 없으면서도 신재생에너지 발전 등에 비해 훨씬 저렴한 전력원으로 원자력발전을 택한 것이다.
이 같은 양상은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내년부터 가정용 화석연료 보일러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채택된 뒤 연립정부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반면 연정의 과도한 기후대응 정책에 반대하는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해 지난 18일 기준 2위(22%)로 올라섰다. 네덜란드에서도 정부가 2019년 가축농가 질소 배출 규제를 도입하자 이를 비판하기 위한 정당 농민시민운동(BBB)이 만들어졌고, 창당 4년 만에 지지율 10%대를 기록했다.
미국 공화당도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후변화 정책 완화를 핵심 선거 전략으로 삼고 있다. 공화당 대표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핵전쟁 위협이 지구온난화 위험보다 훨씬 크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아젠다를 비판하고 있다. 스티브 애크허스트 기후변화 전문 여론조사 분석가는 “미국에서는 기후 의제가 정치적으로 더욱 양극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오현우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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