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한 번씩 포괄임금제가 회자된다. 올초엔 아예 법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자는 법안이 앞다퉈 국회에 상정되더니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만 4건이라고 한다. 그런데 포괄임금제의 정확한 의미가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폐지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되는 것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포괄임금제란 실무와 판례에 의해 형성된 개념으로 통상 ‘당신의 월 급여는 OOO원이고 여기에는 시간 수에 상관없이 모든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대가가 모두 들어 있다’라는 정액급제, 또는 ‘당신의 월 급여 중 OOO원은 기본급이고, OOO원은 시간 수에 상관없이 모든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대가다’라는 정액수당제 등으로 표현된다. 포괄임금제의 핵심은 실제 연장·야간·휴일 근로 시간이 얼마든 위와 같이 사전에 약정한 것 외에는 추가로 어떤 수당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 ‘공짜 야근’의 주범으로 몰리더라도 포괄임금제가 억울할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문제는 포괄임금제가 약정만 있다고 유효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만 허용된다는 점이다. 판례에 따르면 근로자와 사용자 간에 포괄임금제 합의가 있다고 해도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고’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더라도 근로자가 불리하다고 보기 어려운 여러 사정이 있을 때’만 유효한 포괄임금제로 인정된다.
따라서 근로시간 산정이 충분히 가능한 생산직에 대해 포괄임금제를 약정했다면 아예 포괄임금제로서 효력이 없고, 이 경우 포괄임금제가 있다는 이유로 야근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임금 체불’에 해당한다. 위에서 언급한 ‘엄격한 요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괄임금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포괄임금제가 아닌데도 포괄임금제라고 주장하며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 문제다.
포괄임금제 때문에 억울한 오해를 받는 것 중 하나가 이른바 ‘고정 OT(over time)’다. 고정 OT는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대가 중 일부를 지급상 편의를 위해 미리 산정해 선지급하는 약정에 불과하고 포괄임금제와는 개념을 달리한다. 따라서 기본급 외에 월 20시간의 연장근로에 대한 대가를 고정적으로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면, 월 20시간까지는 월 급여 외에 추가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지만, 20시간이 넘어가면 연장근로니까 당연히 50%를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만약 고정 OT가 있다는 이유로 20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에 대해서 따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이는 임금 체불에 해당한다. 즉, 고정 OT가 문제가 아니라 약정한 범위를 초과해 근로했는데도 사용자가 제대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포괄임금제 자체는 잘못이 없다. 공짜 야근 관행을 개선하려면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포괄임금제가 본래적 의미로만 활용되도록 오·남용을 경계하는 것이 맞다. 이런 점을 간과하고 판례상 형성돼온 포괄임금제를 무조건 법률로 폐지해 버리면 근로시간 산정, 근태 관리, 기본급 저하를 두고 지금보다 더한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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