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현수막을 무제한 허용하는 바람에 ‘현수막 공해’를 호소하는 시민이 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의회가 현수막 설치를 제한하는 조례를 통과시키지 않고 뒷짐을 지고 있다. 내년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존재감을 과시해야 하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눈치를 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행정안전부도 현수막 설치 제한 조례는 상위법 위반 사항이라며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있다. 이래저래 서울시민들은 연말까지 현수막 공해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전국이 정치 현수막 난립으로 몸살을 앓게 된 것은 국회가 작년에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무제한 현수막법’으로 불리는 이 개정안은 개수나 규격 등을 정하지 않고 정당 정책 등을 얼마든지 현수막에 적어 걸 수 있게 했다.
곳곳에 현수막으로 인한 안전 문제가 제기되고 시민들의 피로감이 커지자 각 지방자치단체 의회에서는 이를 제한하는 조례를 제정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인천광역시의회(5월), 광주광역시의회(9월), 울산광역시의회(9월)가 각각 개수를 제한하는 등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는 현수막 제한 조례가 상위법 위반이라는 점 등을 들어 본회의 상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이 조례보다 우위에 있어 조례로 막는 게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행안부가 조례 무효확인 소송 및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상위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기에 원내대표단이 논의를 보류하기로 한 것”이라며 “지방과 서울의 사정이 다르기도 하고, 안건 처리를 두 달 정도(11~12월 정례회)까지 늦춘다고 큰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조례안에 이름을 올린 A시의원은 “지역위원장들이 모인 대화방에서 추석 이후 당무감사를 앞두고 있으니 엉뚱한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B시의원도 “추석 연휴는 재선을 준비하는 지역구 의원들과 당협위원장들이 현수막을 걸어 자신을 알려야 할 시점”이라며 “이들이 여러 경로로 서울시의회에 반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오는 12월 12일(내년 4월 10일 총선으로부터 120일 전)부터는 정치현수막 게시가 제한되는 것도 좋은 핑계다. 지난달 24일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선거 120일 전부터는 정치현수막을 걸 수 없다.
시의회 한 관계자는 “행안부가 현수막을 제한하는 조례가 상위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지만, 대법원이 최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기각 결정을 내리는 등 법적으로 꼭 결론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며 “서울시의회는 여의도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여러 가지를 고려한 판단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최해련/김대훈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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