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나 “방한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거대 시장을 더 개방할 것”이라며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자는 뜻도 내비쳤다. 중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고 자국 내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일본과 밀착하고 있는 한국을 끌어당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한 총리는 이날 시 주석과 26분간 마주 앉았다. 시 주석이 한국 정상급 인사와 만난 건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한 뒤 10개월 만이다.
한 총리는 이 자리에서 “중국과 상호 존중, 호혜,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규칙·규범에 기반한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 관계 발전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한·중 양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좋은 이웃으로 앞으로도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시 주석의 방한 검토 언급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일각에서 한·미 협력이 강화되며 한·중 관계가 소원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를 불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 방한이 성사되면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 이후 9년여 만이다. 다만 중국 외교부는 회담 결과 발표문에 시 주석의 방한 발언을 포함하지 않아 양국 외교당국 간 온도 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시 주석은 한국의 미국 중시 외교에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한·중 간 경제 협력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중국과 함께 중·한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정책과 행동에 반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우호 협력의 큰 방향을 유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중·한 경제는 밀접하고 산업망과 공급망이 깊이 융합돼 양국이 상호 이익 협력을 심화해야 계속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중국은 14억 명 이상의 인구가 현대화에 진입했고 거대한 시장을 더 개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 긴장 완화에 대해선 원칙론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한 총리가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을 설명하면서 “중국 측이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해달라”고 요청하자, 시 주석은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 중국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다만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등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경기 침체와 동북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의도”라며 “한·미·일 연대가 생각보다 더 강하게 작동한다면 그중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끌어당기기 위해 시 주석이 방한을 강하게 추진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동력이 크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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