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제도가 1년간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 7월 12일부터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미리 정해진 상품(디폴트옵션 상품)에 자동 투자되는 제도다. 연 1~2% 수준인 연금 수익률을 미국 호주 등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초기 혼선을 막기 위해 1년간 유예기간까지 뒀지만 직장인들의 인식은 여전히 저조하다. 퇴직연금 가입자 10명 중 3명은 수익률을 조회해보지도 않고 계좌를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폴트옵션은 가입 근로자가 운용을 책임지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별다른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더라도 미리 지정한 상품으로 적립금이 자동 투자되도록 하는 제도다. 금융지식이 부족하거나 직장생활에 바쁜 일반인이 퇴직연금을 방치해 놨을 때 운용 지시 권한을 전문가(연금사업자)가 넘겨받도록 해 수익률 제고를 추구한다.
금융회사는 원리금 보장형에 편중된 연금자산이 수익률이 높은 쪽으로 대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디폴트옵션 상품 홍보에 적극 나섰지만 효과는 아직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디폴트옵션을 지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디폴트옵션이 뭔지 몰라서’(43%)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연금운용을 알아서 하고 있어서’(27%) ‘선택을 안 해도 되는 줄 알고’(14%) ‘바빠서’(12%) 등이 뒤를 이었다.
‘1년간 한 번도 확인해 본 적 없다’는 응답자가 28%에 달했고, 1~2회 조회해봤다는 응답자도 39%나 됐다. 1년에 세 번 이상 수익률을 확인하며 적극적으로 계좌를 관리한 직장인은 33%에 그쳤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 본부장은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이유는 분산투자와 장기투자를 통한 수익률 제고인데, 원리금 보장 상품이 주요 선택지에 들어 있는 등 허점이 있다”며 “앞으로 가입자 금융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정착에 성공한 연금 선진국과 달리 디폴트옵션 발동 조건이 복잡하다는 점이 가입자의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국가들은 ‘가입자의 운용 미지시→디폴트옵션 발동’ 2단계만 있지만 한국은 중간에 ‘가입자의 디폴트옵션 상품 사전지정(선택)’ 단계를 넣었다.
김 본부장은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 논란을 확실히 없애겠다는 취지지만 방치된 적립금의 수익률 제고라는 디폴트옵션 도입 취지를 스스로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후 준비를 위한 필수 재무적 행위를 묻는 항목(3순위까지 선택 가능)에선 예·적금 저축이란 응답이 56%로 1위였다. 이어 ‘국민연금 가입’(43%) ‘개인연금 가입’(42%) ‘일자리를 위한 자기계발 투자’(37%) ‘내 집 마련’(31%) ‘보험 대비’(28%) 등이 뒤를 이었다. ‘금융투자’라고 답한 직장인은 27%로 예·적금 저축의 절반 수준이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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