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만 앞세운 탄소중립 목표가 몰고 올 후폭풍은 이처럼 파괴적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철강·시멘트·석유화학 3개 업종에서만 2050년까지 최소 400조원의 저감 비용이 들어간다. 제조업과 에너지업계가 감당해야 할 돈은 1000조원 이상이다.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다. 우리 국민은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연간 41조~96조원의 추가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다른 분석도 있다. 10여 년 뒤에는 한국 경제가 성장률 0%대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돼 더욱 충격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6개월여를 남긴 2021년 11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과 ‘2050년 탄소배출 제로’ 목표를 공언하고, 탄소중립 기본법까지 제정해 아예 대못을 박았다. 에너지 빈국이자 제조업 강국인 우리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국제사회에 생색내기 위해 국가적 자해 행위를 저질렀다는 비판이 거듭 나왔던 이유다. 결국 신중한 한은까지 실증적 수치로 우려를 표시할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적 각성이 일고 있다. 2017년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한 스웨덴이 지난 20일 당초 입법대로 2045년까지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같은 날 “국민을 파산시키면서 지구를 구하지 않겠다”며 일부 정책 후퇴를 천명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전임 정부의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일변도에서 벗어나 원자력과 신재생의 균형 있는 조합으로 탄소 감축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 이제 여기서 더 나아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재설정하고, 질서 있는 에너지 전환 정책의 새 판까지 다시 짜야 한다. 이런 시점에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무탄소(CF·carbon free) 에너지’ 확산을 제안하고 한국이 주도하겠다고 밝힌 것은 의미심장하다. 급변하는 국제 기류에 발맞추며 탄소중립 이행 수단을 현실화하는 동시에 배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실현 가능한 정도로 속도를 적극 조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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