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민들은 멀쩡히 눈 뜨고 ‘물길’만 내주고, ‘물값’ 한 푼 못 받고 불편만 겪고 있습니다.”
이충우 여주시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한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용수 공급시설 인허가를 늦춘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반도체 클러스터에 120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SK하이닉스를 향해 물값에 상응하는 지원 방안을 마련해오지 않으면 물길을 내줄 수 없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여주시의 ‘몽니’에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인허가 처리는 예정보다 5개월 이상 늦어졌다. 감사원이 25일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등 인허가권을 남용했다”며 이 시장에 대한 ‘엄중 주의’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요구한 이유다.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려면 막대한 공업용수가 필요하다. 정부는 약 37㎞ 떨어진 여주 남한강까지 용수관로를 설치해 하루 26만5000t의 물을 끌어온다는 계획을 세웠다. 산단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여주시가 내줘야 할 9개 인허가 중 4개는 작년 3월까지 협의가 완료됐다. 도로·하천 점용 허가 등 나머지 5개 인허가도 관련 마을 주민과 지원 방안 합의를 마쳐 여주시의 협의 완료 처리만 남겨뒀다.
그런데 6·1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이 시장은 당선인 시절부터 상생 방안 등 추가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인허가 협의 중단을 지시했다. 이 시장은 SK와 사업자 측에 축사 악취 민원 해결을 위한 역세권 도시 개발과 산업단지 공동 개발 사업, 장학금 기탁, 지역 대학에 반도체 계약학과 설치 등을 요구했다. 정부에는 한강 수계 보호를 위해 설정된 자연보전권역 관련 규제 완화 등을 추가로 요구하고 나섰다. 용수관로 설치를 위한 인허가와 실질적 관련이 없는 데다 신청인인 사업자가 이행할 수 없는 조건들이었다. 인허가가 기약 없이 늦춰지면서 사업자 측은 금융 비용 등으로 1주일에 17억원씩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감사원이 소극 행정 사례로 지목하고 감사에 착수하자 여주시 간부들은 인허가 협의 처리를 이 시장에게 건의했다. 이 시장은 “상생 방안 협의가 우선”이라며 거부하다가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11월에야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 중재로 인허가를 내줬다.
감사원은 “지역 숙원 사업, 선거 공약이라는 이유로 자치단체장이 인허가권을 남용해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거나 손해를 끼치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며 이번 사례를 각 자치단체에 전파하라고 행안부에 통보했다.
해당 물류창고는 이미 전임 시장 때 적법하게 건축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그러자 양주시는 공사 차량 진출입을 위한 도로 점용 및 공유재산 사용 허가를 반려하며 착공을 지연시켰다. 결국 시공사는 양주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양주시는 지난해 11월 “감사원의 지적을 수용하겠다”며 뒤늦게 착공에 필요한 인허가를 내줬다.
서울시가 소극적 법 집행으로 심야 택시 부족 등 ‘택시 대란’을 초래했다는 감사 결과도 나왔다. 택시 운행률이 57%에 불과한데도 휴업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등 운행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택시 요금만 인상했다는 것이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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