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벌금 안 물리고 시간 줄 테니 세를 놓은 경우든 실제 주인이 사는 경우든 내년 말까지 나가라는 얘기잖아요. 해결책도 없는 이런 방안이 무슨 대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생활형 숙박시설을 분양받아 사는 한 소유주)
정부가 생활형숙박시설(생숙)에 대한 대책을 내놨습니다. 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는 특례기간은 연장 없이 내달 종료하고 ‘벌금’인 이행강제금 처분은 내년 말까지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소유주들은 "알맹이 없는 대책"이라고 볼멘소리했습니다.
2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전날 생숙 숙박업 신고 계도기간을 2024년 말까지 주고 이행강제금 처분을 유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벌금 부과를 미루겠다고는 했지만 생숙을 주거용으로는 더는 이용해선 안 된다는 원칙도 분명히 했습니다. 정부가 이런 원칙을 세운 까닭은 생숙의 상당수가 투자 목적과 다주택자의 규제 회피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벌금은 유예해주겠다고 했지만 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는 특례기간은 연장 없이 내달 14일 종료하기로 했습니다. 그간 2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오피스텔로 바꾼 생숙은 1996실로 전체 생숙의 2.1% 수준에 불과합니다. 지자체 사전점검 결과 상당수 실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나타나서입니다. 미신고 생숙 약 4만9000실 가운데 소유자 1명이 2실 이상 소유한 경우가 3만실(61%), 30실 이상 소유한 경우도 1만800실(37%)입니다.
생숙은 2010년대 초반 국내 관광업계에서 외국이 관광객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생숙의 특징은 주거용 오피스텔과 유사한 건축물을 숙박업 용도로 사용하도록 허가했다는 점입니다.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건축법을 따르고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나 종합부동산세 등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집값이 급등한 2020~2021년엔 투자 수요가 몰리기도 했습니다.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서 분양한 한 생숙은 청약에 57만명이 몰렸습니다. 심지어 로열동·로열층·로얄라인을 일컫는 'RRR' 분양권에는 웃돈(프리미엄)이 2억원까지 붙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문제는 생숙을 분양받은 소유주 가운데는 '실거주가 가능하다'고 안내받은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 생숙 소유자는 "분양받을 당시 '투자한 이후 들어가서 살면 되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분양사무소 관계자에게 설명을 들었는데 이제와 날벼락을 맞았다"고 말했습니다.
전국레지던스연합회 관계자는 "99%의 생숙이 용도변경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행정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에 나온 방안은 해결책도 담기지 않아 대책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도 "2년 동안 생숙이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된 사례는 극히 드문데 용도 변경 특례기간은 연장이 되지 않아 사실상 남은 생숙은 오피스텔로 전환하기 어렵다"며 "결국 내년 말에는 현재와 같이 생숙 소유자들이 이행강제금을 내든 시위를 하든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해결책 없이 현 상황만 뒤로 미룬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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