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엔 대한민국 최고의 명산을, 다른 한쪽엔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천혜의 도시. 조선시대 문인 정철이 “곱게 다려 펼쳐놓은 비단 같다”고 극찬한 경포호의 도시.
강원 강릉 얘기다. 한국 대표 휴양지인 만큼 다들 강릉을 ‘여름 도시’라고 생각하는데 오색 단풍이 자아내는 ‘가을 강릉’의 매력도 그에 못지않다. 작년부터 가을에 강릉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이 페스티벌은 26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 강릉 일대는 국내외 작가 13명이 만든 예술작품으로 물든다.
주최 측은 그래서 올해 주제를 ‘서유록’으로 정했다. 서유록은 1910년대 강릉에 살던 김씨 여인이 대관령을 넘어 한양에 갔다 온 37일간의 여정을 담은 여행기다. GIAF를 기획한 박소희 예술감독은 “김씨 여인이 한양에 가서 신문물을 접한 것과 반대로 관광객이 강릉의 새로운 모습을 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관령 치유의 숲이 바로 그런 사례다. 빼곡한 소나무 숲 사이, 600m 길이 나무 데크를 걸어가다 보면 한 여자가 나타난다. 가까이 다가가면 여자가 30초 동안 무작위로 노래를 불러준다. 어떤 사람에겐 1990년대 발라드곡을, 어떤 사람에겐 동요를 불러주는 식이다.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금메달’(황금사자상)을 받은 세계적 행위예술가 티노 세갈의 작품이다. 그는 관람객이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과정과 행위를 중요하게 여긴다. 향긋한 솔 내음과 어우러지는 라이브 노래는 잊지 못할 경험이다. 작가의 원칙에 따라 사진과 동영상 촬영은 금지된다. 반드시 대관령에 가야만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얘기다.
46년 세월이 담긴 강릉 동부시장은 미술 전시장이 됐다. 낡은 미용실과 참기름 집 사이, 옛 매운탕 집으로 쓰이던 233호 ‘레인보우’에 들어서면 생경한 모습이 펼쳐진다. ‘해물탕 大 1만5000원’ 메뉴판 밑에 이우성 작가의 걸개 그림이 걸려 있다. 일상의 한 조각을 그림으로 옮기는 그는 이번엔 강릉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뒷모습, 바다 근처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그려 전시했다. 그는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동부시장이란 장소와 강릉을 배경으로 한 작품의 만남이 재밌어 보였다”고 했다.
박 이사장에게 ‘바이오 회사가 왜 문화재단을 세우고 이런 행사를 여느냐’고 묻자 이런 답을 들려줬다. “그런 말, 수도 없이 들었어요. ‘기업들이 으레 하는 구색 갖추기가 아니냐.’ 그럴 때마다 제 답은 항상 똑같습니다. ‘외지 사람들은 강릉의 진면목을 잘 모른다. 페스티벌을 통해 강릉의 진짜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요.”
GIAF는 급조한 행사가 아니다. 박 이사장은 2017년부터 GIAF를 준비했다. 강릉의 지역성을 살리면서 미술 애호가들이 기꺼이 강릉을 찾도록 할 차별점을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이번에 GIAF 참여 작가 리스트를 강릉 지역 작가뿐 아니라 티노 세갈, 로사 바바 등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로 꾸린 이유다. 그는 “쉽게 볼 수 없는 해외 작가의 작품으로 미술 애호가를 강릉에 끌어온 다음 이들이 강릉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즐기도록 고안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GIAF를 ‘프랑스 칸 영화제’처럼 강릉을 세계에 알리는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칸이라는 작은 도시가 영화제 하나로 세계적 관광지가 된 것처럼 GIAF를 강릉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파마리서치가 보유한 20만㎡ 부지를 활용해 GIAF를 미술과 음악, 미식을 아우르는 ‘종합 페스티벌’로 키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강릉=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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