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전임 총재가 총재고문을 맡아 일하는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총재 재임 중 금융통화위원회와 한은을 이끌었던 경험을 후임 총재와 금통위원, 임직원에게 전달하는 건 국가 경제 전체로 ‘자산’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이 전 총재는 한은에서 43년간 근무한 최장수 ‘한은맨’이다. 그는 1977년 한은에 입행해 핵심 요직을 거쳤고,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총재로 임명된 후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1998년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맡기 시작한 이후 총재 연임은 그가 처음이었다.
코로나19 기간에는 금리 인하를 이끌기도 했다. 적극적인 긴축 행보를 하고 있는 이창용 총재와 한은 직원들에게 이 전 총재가 나눠줄 경험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총재고문직이 전관예우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곱씹어볼 만하다. 2000년 이후 모든 한은 총재가 퇴직 후 당연하다는 듯 총재고문에 취임했다. 21대 전철환 총재, 22대 박승 총재, 23대 이성태 총재, 24대 김중수 총재 등이다. 자문료를 거절한 김 전 총재 외에 다른 총재고문들도 월 200만~400만원의 자문료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자문을 했는지는 이 전 총재와 마찬가지로 알기 어렵다.
물론 총재고문들이 그저 고문료만 받은 건 아닐 것이다. 한은이 지난 3개월간 출입기록을 살펴본 결과, 이 전 총재는 총 27회 한은 강남본부 사무실에 출근했다고 한다. 이창용 총재는 물론 임직원에게도 수시로 조언한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하지만 총재고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문을 했는지에 대해선 기록이 없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깜깜이 자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직 한은 총재들이 총재고문을 맡았을 땐 자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한은 임직원 등을 대상으로 공개 강연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불필요한 논란을 피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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