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자동차 번호판 하나에 1700만원 이라니?"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구입하려면 소형차 한대값을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다.
상하이 번호판이 비싼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상하이 도시는 내환(??)·외환(外?)으로 나뉜다. 시내인 내환으로 들어가려면 시내 고속도 (高架)를 타야 빠른데, 외지(타지) 번호판 차량은 이를 이용하는데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외지 차량이 이를 무시하고 내환으로 운행을 하면, 벌금은 물론 벌점을 물어야 하고, 급기야는 운전면허시험을 다시 볼수도 있다.
문제는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내 대도시 번호판을 구입하기가 쉽지않으니 그만큼 가격이 비싸질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상황이 이러니까 자동차 번호판을 얻으려 위장결혼을 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 번호판 중개업자를 통하는 방식인데, 베이징 후커우(戶口·호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남성의 경우 베이징 후커우를 소지한 여성과 결혼해 그가 가진 자동차 번호판 소유권을 이전 받는데 3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상하이 번호판 사례에서 보듯이 중국에는 지역 출신지별로 호구제도(?籍制度)에 의해 엄격한 차별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중국에서 호구제도는 1958년부터 시작되었다. 호구제도에 따라 중국인의 호구는 농업 호구와 비농업 호구로 나뉜다. 농업 호구는 농촌 호구, 비농업 호구는 도시 호구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국에서 호구 변경은 우리나라처럼 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까다롭고 어렵다.
농촌 호구를 가진 자들이 도시 호구를 얻기가 어렵다. 고학력자, 군인, 공무원, 국영기업 근무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농촌 호구를 가진 자가 도시 호구를 취득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뿐만 아니라 중소도시의 도시 호구를 가진 자들 역시 대도시의 호구를 갖기란 쉽지 않다. 중국에서 호구의 가치는 '대도시 > 중소도시 > 농촌' 쯤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중국의 호구제도 문제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농민의 도시로의 이주가 자유로워지고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농촌인구가 증가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농촌 호구를 가진 자와 도시 호구를 가진 자가 함께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사회가 제공하는 교육, 의료, 교통 등의 공공서비스는 호구제도로 인해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도시 호구를 가진 자들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 오랫동안 유학원과 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씨를 최근 부산에서 만난적이 있다. 그녀는 중국 유학시절 중국인 남편을 만나 아들, 딸 한명씩을 낳아 중국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입학시험을 앞두고 중국 국적인 딸을 한국인으로 귀화시켰다고 한다. 아들과 남편은 중국인, 자신과 딸은 한국인으로 살아가게되는 셈이다. 한마디로 가족들이 생이별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왜 이런일이 벌어질까?
중국 대입시험 '가오카오(高考)'는 신분상승의 주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가오카오는 중국의 호구제도와 밀접하게 연동돼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호구에 따라 시험을 보는 장소도 정해지는 구조다.
중국의 유수 대학들이 베이징에 포진해 있는데 각 성이나 시에서 치르는 시험의 경우 난이도가 다를 뿐 아니라 각 대학 입학에 할당되는 규모도 다르다.
예를 들면, 베이징대와 칭화대는 2023년도 입학사정에서 베이징내 호적이 있는 고3 혹은 재수생 대상, 입학정원을 두 대학 합쳐 550명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카오카오 점수가 베이징내 응시생 5만4000명 중에서 1%이내 들어가야 진학이 가능하다.
허난성(河南省)의 경우 400명 정원을 할당했는데, 응시생은 125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하늘에 별따기다. 0.03%이내 들어가야 진학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부모의 호구를 따라 시험이 어렵거나 경쟁률이 치열한 지역에서 시험을 봐야 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중국에서 어학원을 하는 김씨의 남편은 베이징 호구가 아닌 다른지역 호구를 갖고 있어, 입시를 앞둔 자녀의 호구 신분은 원래 살던 지역으로 규정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딸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대신, 외국인 유학생 신분으로 해서 중국 대학에 진학시키려는게 부모의 생각인 것이다.
중국의 도시화 과정에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을 막기 위해 도입된 호구제도가 학생들의 교육권을 가로막는 셈이다.
1958년 중국 정부가 정식으로 ‘호구제도’를 실시한 이래 이미 반세기가 지났다. 개혁개방 전 이 제도는 주로 농민들을 토지에 얽매어 놓아 정부가 농산물을 염가로 수탈하여 중공업 우선의 계획경제제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중국에서는 자유이주는 커녕 타 지역 여행과 같은 이동조차 자유로이 할 수 없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부는 농민들이 자유롭게 토지를 경작하고 그 외 시간을 자유로 지배하는 것을 허용했는데 이는 지난 30여 년 간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다. 농민들이 설립한 이른바 ‘향진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농민공’들이 중국을 ‘세계 공장’으로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공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정부가 기존 도시 주민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야 하는 정치사회적인 고려 때문에 대다수 농민들은 도시에서 공업화에 공헌하면서도 여전히 도시 주민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농민공’이라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생활수준이 높고 거주 환경이 쾌적한 도시나 연해지역일수록 농민들에게는 진입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다. 물론 일부 연해지역과 원래 도시 주변 농민들이 공업화, 도시화 속에서 토지 가치 폭등의 혜택을 입어 ‘졸부’가 된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에서 ‘호구제도’의 불이익을 받은 것은 농민들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도시호구에도 여러 가지 등급이 있다. ‘도시호구’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그 지역의 합법적인 거주자로서 받을 수 있는 경제적인 혜택에 기인한다. 즉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취업 기회, 임금 수준, 의료보험과 양로보험 혜택, 자녀 교육 조건, 편리한 교통, 문화시설 등 생활 인프라 때문에 거주 지역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가 달라지면서 그 지역 ‘호구가치(含金量)’도 크게 차이가 있다.
이는 그 만큼 서로 다른 호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경제적 지위에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최근 중국은 부동산 침체와 개발업체들의 채무불이행(디폴트)과 파산 등으로 글로벌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떠올랐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진정한 위기는 부동산이 아니라 중국인의 ‘불안한 심리’에 있다는 분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수중에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제로 코로나’ 등 엄격한 방역 정책의 영향으로 가계저축이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해 17조8400억 위안(약 3238조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즉 현재 소비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소비지출은 국내총생산(GDP) 기여율이 올해 상반기 77.2%에 달할 정도로 국가 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중국 정부는 지난달 말 노후차량 보상 판매를 장려하고 신용카드 한도를 상향하는 등 소비 진작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폭락과 사상 최고치에 달한 청년실업률 등으로 소비자 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호구제도 개혁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호구제도에 의해 작동하고 있는 지역간 서로 다른 취업 기회, 임금 수준, 의료보험과 양로보험 혜택, 자녀 교육 조건, 편리한 교통, 문화시설 등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거나 해소해준다면 중국의 경제회복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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