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판결 당시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판사가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언어적 기교로 사실과 법리를 꿰맞춘 ‘기교사법’이라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지난달 27일 기각한 사유를 보며 기교사법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검찰이 이 대표에게 적용한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성남시장 시절 백현동 개발 특혜비리 사건의 배임, 경기지사 시절 방북 추진 과정에서 쌍방울그룹이 북한에 방북 비용을 대납한 뇌물, 과거 이 대표의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한 위증교사 등이다. 형사소송법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구속의 전제조건으로 하면서 주거 부정, 증거인멸 염려, 도주 염려를 구속의 사유로 들고 있다. 아울러 구속 사유를 심사할 때 범죄의 중대성, 재범 위험성, 피해자나 중요 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영장담당 판사가 밝힌 기각 사유를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게 한둘이 아니다. 본 재판도 아닌데 의심할 만하다면서도 혐의 소명을 위한 직접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취지를 벗어난 것 아닌가.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되는데도 다른 사건의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고 볼 수 있는가. 위증교사 및 백현동 사건의 경우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 물적 자료에 비춰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어떤 사건은 직접 증거가 부족해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하고, 다른 사건은 증거가 충분하니 인멸 우려가 없다는 건 궤변 아닌가. 피의자가 정당의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라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긍하기 어려워도 법원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런 사유들이 속속들이 공개됐는데도 영장 기각이 마치 면죄부인 양,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양 쾌재를 부르며 대여 공격 모드로 전환한 이 대표와 민주당을 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영장 기각이 무죄가 아님은 통계로 확인된다. 대법원이 발간한 ‘2023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형사재판 1심 무죄율은 3.1%였다. 구속 사건의 무죄율은 0.6%, 불구속 사건 무죄율은 3.6%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영장 기각률(18.6%)보다 훨씬 낮은 것이 불구속 사건의 무죄율이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청와대 감찰 무마 사건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대표는 영장 기각 후 서울구치소를 나오면서 “이제는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경쟁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말은 참 그럴싸하다. 하지만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가결표를 던지면 끝까지 색출해 정치생명을 끊을 것”이라던 친명계와 개딸들의 행태에 수수방관한 그였다. 대장동·백현동·대북송금 사건으로 이미 24명이 구속됐고, 이 대표 주변의 관련 인물 가운데 5명이나 사망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 앞서 부끄럽고 죄스러워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메아리도 없는 영수회담 타령에다 대통령 사과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파면, 한덕수 총리 해임안 수용을 요구하며 공세 수위만 높이고 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을 공언하고, 방송법과 파업조장법 등 쟁점 법안도 한사코 밀어붙일 태세다. 정녕 수치심도 죄의식도 없단 말인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