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파운드리는 미생물을 공장처럼 사용하는 개념이다. 합성생물학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해 바이오 연구개발(R&D)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플랫폼이다. 새로운 바이오 시스템 제작을 위한 설계(design)-제작(build)-시험(test)-학습(learn)의 전 과정을 표준화, 자동화, 고속화해 고속·고처리량으로 구동한다.
통상 반도체 생산이 설계(팹리스)-제조(파운드리)-테스트와 패키징(OSAT) 등으로 세분화한 것과 다르게 바이오파운드리는 한곳에서 모든 과정이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R&D에 필요한 반복 노동 업무를 자동화하고, 처리량은 극대화해 기존 기술보다 훨씬 큰 규모의 R&D를 현실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선진국은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에 국력을 쏟아붓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합성생물학 연구가 본격화한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바이오파운드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6년 국립과학재단(NSF), 2013년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바이오파운드리 지원을 본격화했다.
그 결과 미국에선 이미 바이오파운드리로 주목받기 시작한 회사가 나타나고 있다. 긴코바이오웍스가 대표적이다. 2008년 설립된 이 회사는 생명공학 기업 자이머젠의 바이오파운드리를 인수하면서 이를 토대로 모더나와 함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나섰다. 모더나의 신속한 백신 개발에는 긴코바이오웍스의 바이오파운드리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부분 바이오파운드리가 공공 성격인 데 비해 긴코바이오웍스는 자체적으로 세계 최대 수준의 민간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했다. 긴코바이오웍스는 “합성생물학이 거의 모든 물리적 재화를 생산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합성생물학이 산업 대전환기에 기술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할 핵심 키워드라는 뜻이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국가 합성생물학 로드맵을 수립하고 정부 주도로 2012년 이후 7개의 합성생물학센터와 3개의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했다. 2016년부터 생물 정보에 AI 기술을 적용해 고도화한 생물 기능을 설계, 활용을 지원하는 ‘스마트 셀(smart cell)’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덴마크 캐나다 일본 싱가포르도 바이오파운드리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은 선전에 7200억원을 들여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뒤늦게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지만 세계 수준과의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다. 2021년에야 ‘제15차 혁신 성장 빅3(BIG3) 추진회의’에서 바이오파운드리가 보고된 것이 시작이다. 지난해 말엔 ‘국가 합성생물학 이니셔티브’가 발표됐다. 이니셔티브에는 바이오파운드리 구축 예비타당성조사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명시됐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총 3000억원 규모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4월 미국 보스턴 방문을 계기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를 통해 공공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에 협력하기로 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에서는 한국이 TSMC 같은 파운드리를 구축하지 못했지만 바이오만큼은 국가 명운을 걸고 초격차 파운드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스턴=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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