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 출신 직장인 궁사 주재훈(한국수력원자력)은 컴파운드 양궁 혼성전 결승에서 1년 치 연봉과 맞바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재훈과 소채원(현대모비스)은 4일 중국 항저우의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 양궁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컴파운드 양궁 혼성전 결승에서 인도의 오야스 프라빈 데오탈레, 조티 수레카 벤남에게 158-159로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리커브와 달리 컴파운드는 선수들의 기량이 상향 평준화돼 있기 때문에 국제대회에서의 메달 획득 난도가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혼성전은 남녀 최고 선수들이 합을 맞춰야 해 메달을 따내기 더 어렵다.
이번 은메달은 주재훈에게 의미가 더 크다. 생업까지 한시적으로 포기해 가면서 노력한 끝에 거둔 성과여서다. 주재훈은 전문 선수가 아닌 일반 직장인이다. 그는 한국수력원자력 청원경찰로 근무 중이다. 양궁은 대학생이던 2016년 우연한 기회에 경북 경산의 컴파운드 양궁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시작했다. 동호인 대회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등 재능을 뒤늦게 발견한 주재훈은 다섯 번이 도전 끝에 2023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진천 선수촌에 입성하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선 청원경찰이란 생업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그렇게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본격적으로 국가대표 생활에 메달렸다. 무급 휴직이었던 만큼 부인 등 가족들도 설득해야 했다.
결과는 은메달. 주재훈은 진급과 은메달 중 하나만 고르라면 뭘 고르겠느냐는 물음에 "정말 고르기 어렵다"면서도 끝내 "은메달"이라고 답했다. '1년 연봉과 맞바꾼 메달 아닌가?' 하고 묻는 취재진의 말에는 "그런 셈이다. 하지만 결코 후회는 없다"고 했다.
주재훈은 유튜브를 통해 외국 선수들의 자세와 장비 튜닝법, 멘털 관리 노하우 등을 배웠다고 한다. 동호인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면서 배운 것들을 실습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주재훈은 "(전문 선수와 다르게) 주어진 선택권이 넓다 보니 전문 선수들을 따라잡기 위한 여러 가지 것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직장 생활과 훈련을 병행하다 보니 일반 선수들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는 훈련 시간은 훈련 속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극복했다. 주재훈은 "퇴근 후 2∼3시간 정도 훈련했는데, 전문 선수들의 3배 속도로 활을 쏴 시간을 아꼈다"며 "보통 6발을 쏘면 15분이 걸리는데, 난 5분 안에 쐈다. 나만의 압축 훈련 방식이었다. 훈련은 충분히, 제 나름대로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재훈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 도전하지 않을 계획이다. 주재훈은 "내년에도 또 '국가대표 하겠다'고 하면 회사에서 잘릴 것 같다"며 "2026년 정식 종목이 되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전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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