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고작 88개의 건반으로 희로애락을 그려낸다. 장욱진 작품에서 느껴지는 경이로운 예술적 매력도 같은 맥락이다. 장욱진은 까치와 산, 나무와 가족 등 한정된 몇 개의 주제만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작은 작품을 주로 그렸기에 소재들을 변주할 수 있는 여지도 적었다. 그런데도 1000점이 넘는 그의 작품 중에서는 똑같은 그림이 단 한 점도 없다. 장욱진 작품의 세 가지 특징을 통해 그 매력을 자세히 풀었다.
그림은 작아도 그 안에 품은 아름다움은 결코 작지 않다. 작은 캔버스 안에 여백을 일부러 만드는 등 다양한 조형적 시도를 통해 그림의 밀도감을 더욱 높이고 작품이 크게 느껴지도록 한 덕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와 전시디자이너 김용주 기획관이 1전시실에 장욱진의 작업실을 본뜬 좁고 낮은 공간을 마련하고 일부 작품은 몸을 기울여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한 건 이런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시 2부에 있는 ‘콤포지션’ 코너에서 작품들과 함께 그 안에 숨겨진 구도에 대한 해설을 만날 수 있다. ‘그저 작고 예쁜 작품’이라는 단편적인 인식을 넘어 장욱진이 이룩한 예술적 성취에 감탄하게 되는 곳이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성품이 이를 가능케 했다. 원로 작가 최종태(91)가 장욱진을 스승으로 모시던 시절, 스승의 그림 속 일렬종대로 날아가는 참새를 보고 “참새는 그렇게 날지 않던데요”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내가 시켰지”라는 천연덕스러운 답이 돌아왔다는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문인화풍(文人畵風)의 그림에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학 대신 까치를 쓴 것도, 그림 속 산에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길을 낸 것도 장욱진이 처음이었다.
전시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 말년의 작품들은 그 결과물이다. 배 학예사는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내공이 만들어낸 통달의 경지가 동서양화의 자연스러운 융합을 가능하게 했다”며 “장욱진 말년 작품의 매력을 알린 게 이번 전시에서 가장 보람찬 점 중 하나”라고 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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