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변호인 역할"…전현희 감사 재심의한다

입력 2023-10-05 18:20   수정 2023-10-06 11:40

‘지인을 통해 라디오 PD를 소개받아 직접 감사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감사 대상자 및 담당 변호사와 따로 접촉해 진술서·의견서를 받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은 감사원장과 사무처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감사원이 이달 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 관련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에 적시된 조은석 감사위원의 부적절한 처신 중 일부를 요약하면 이렇다.

조 위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1년 1월 차관급인 감사위원에 임명됐다. 지난 6월에는 주심을 맡아 전 전 위원장의 ‘상습 지각’ 등 의혹에 대한 감사 결과를 심의했다. 감사 결과가 나오자 사무처의 절차 위반(감사위 의결 없이 감사 실시) 등을 문제 삼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감사원은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감사와 관련한 각종 의혹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은 우선 조 위원이 제기한 절차상 하자는 긴급성을 요하는 감찰업무의 특수성과 관행, 당시 감사위 다수 의견을 고려하면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조 위원이 최재해 감사원장 제척을 계속 요구한 것에 대해선 “제척을 통한 의결정족수 미달로 감사 결과 전체의 불문(문제 삼지 않음)을 관철하려 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고 봤다.

조 위원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군복무 특혜의혹 유권해석 사건과 관련해 직접 조사에 나섰던 점도 부적절한 처신으로 꼽혔다. 2020년 9월 권익위 한 간부는 MBC 라디오에 출연해 ‘추미애 유권해석은 실무진 판단에 의해 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당초 감사원은 이 같은 인터뷰가 전 전 위원장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감사보고서 초안에 적시했다.

하지만 조 위원은 해당 프로그램 후임 PD와 접촉해 ‘당시 MBC가 권익위에 출연 요청을 한 것’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감사위에서는 이를 근거로 사무처 조사 내용이 허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라디오 출연 관련 부분은 최종 감사보고서에 실리지 않았다.

감사원은 “주심위원이 사적 친분을 이용해 감사 내용을 외부에 유출하고 자료를 취득한 것은 전례 없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밝혔다.

조 위원이 감사 대상인 전 전 위원장 수행비서로부터 받은 진술서를 감사위원들끼리만 돌려본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해당 수행비서는 철도요금과 숙박비 수백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해임 처분이 통보됐다. 조 위원은 전 전 위원장의 법률대리인으로부터 받은 2차 의견서 역시 사무처에 제출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중립적 심판관인 감사위원으로서 책무와 부합하지 않고 마치 특정인의 변호인처럼 오인받을 만한 부적절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감사원은 전 전 위원장 관련 감사를 직권으로 재심의하는 한편 조 위원에 대해서는 수사 요청과 함께 주심위원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감사원은 지난 6월 감사보고서에서는 전 전 위원장의 상습 지각 내역을 공개하면서도 ‘기관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감사위 의견에 따라 징계 조치를 통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사혁신처가 8월 ‘기관장도 복무규정 적용 대상으로 근무시간을 준수해야 한다’고 법령 해석을 회신해옴에 따라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감사보고서에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유권해석과 관련한 전 전 위원장 개입 의혹이 빠진 점에 대해서도 감사원은 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 전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SNS에 “판사격인 주심위원의 판결이 맘에 안든다고 검사격인 사무처가 주심위원을 감찰하고 그 이해충돌 감사결과를 가지고 수사 요청하는 불법적 행위를 자행한 것”이라며 “재심의를 강행할 경우 관련 법령 위반 및 직권남용 실체적 경합범으로 가중처벌대상이 될 수 있는 중대 범죄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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