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릴 곳이 없다"…'초비상' 바이오텍 주주에 손 벌리는 이유 [더 머니이스트-이해진의 글로벌바이오]

입력 2023-10-11 07:32   수정 2023-10-11 10:48


올 하반기로 들어서면서 바이오텍 주주를 대상으로 한 유상증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빠듯해진 자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마지막 처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요. 당초 예상보다 고금리 상황이 길어지면서 자금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고, 주가도 부진해 자금을 확보할 별다른 수단이 마땅히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할 매출원도 없이 외부 자금 조달에 의존해서 신약 개발을 이어가는 바이오텍들은 통상 향후 2년간 사용할 자금을 미리 확보해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건스탠리가 2022년 초 실시한 분석에 따르면 바이오텍 중 연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이 전체의 30%로 나타난 것도, 2년간 사용할 자금을 확보해 두고 3년마다 다시 자금을 조달하는 바이오텍의 자금 확보 주기와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물론 금융 환경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금리로 악화된 금융 환경이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비용 절감과 구조 조정으로 버티면서 보다 개선된 환경에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바이오텍들이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 바이오텍의 자금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현금 가용연수를 계산해 보는 것입니다.

기업의 연간 영업손실금액을 유동자산에서 유동부채를 뺀 금액으로 나누면 해당 기업이 가용 가능한 자금을 현재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지 대략 계산할 수 있습니다. 모든 증권사가 제공하는 주식주문시스템에서 클릭 2번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업 정보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재무제표는 분기마다 발표되기 때문에 뉴스 검색을 통해서 분기 말 이후의 신규 자금조달 및 기술수출 등과 같은 변동사항을 추가로 파악해야 합니다.

국내 신약 개발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올해 들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현금 가용연수를 계산해 봤습니다. 2022년 말 기준 국내 30개 바이오텍의 평균 현금 가용연수는 1.8년이었습니다. 모건스탠리가 분석한 미국 바이오텍의 현금보유 현황과 비슷한 수준으로 작년 말까지만 해도 자금 흐름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전체 34개 기업의 평균 현금 가용연수를 계산한 결과 0.8년으로 나타났습니다. 자금 상황이 급격히 악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4개 기업 중 1.0 이하로 1년 안에 추가적인 자금조달이 필요한 기업이 14개이며, 전체 41%를 차지했습니다. 보통 30%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수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작년 말 대비 현금 사정이 크게 악화한 겁니다.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아 허리띠를 졸라매며 금융 환경이 개선되기만을 기다려온 바이오텍들은 올해 상반기를 지나면서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 이후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한 기업들이 늘어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메디포스트가 1199억원, 박셀바이오가 1006억원, 루닛이 2019억원, 메드팩토가 1159억원, 아미코젠이 957억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해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의 메리트도 제한적입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도 움츠러든 금융 환경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모든 퇴로가 막힌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회사의 주인인 주주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주주배정 유상증자는 주주에게 유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관건은 성장 가능성입니다. 주주가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것은 다른 투자 기회를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예금이나 혹은 다른 투자수단을 선택해서 얻는 이익보다 유상증자 참여가 더 유리한지를 원점에서 고민해 의사 결정해야 합니다.

결국 그 기업의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을 다시 한번 신중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는 의미이죠. 그런 관점에서 기업이 조달한 자금을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용하는지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해당 기업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한 주주로서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본 핵심 파이프라인의 임상을 진행하기 위한 자금 조달이라면 충분히 참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몇 년 전만해도 투자자가 줄을 잇던 바이오 열기도 금리 상승과 더불어 싸늘하게 식은 지 오래입니다. 금융 환경은 항상 변하기 마련입니다. 고성장과 저성장, 고유가와 저유가, 고금리와 저금리, 그리고 고환율과 저환율, 대부분은 예측하지 못한 시기에 의외의 요인에 의해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의 고물가와 고금리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가정도 무리가 있습니다. 보다 균형 잡힌 투자자의 관점에서 국내 바이오텍의 악화된 자금 현황과 투자 기회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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