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 다음의 '여론 조작' 논란이 정치권에서 순식간에 뜨거워졌다가 확 식는 모양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중 축구 8강전을 계기로 드러난 '클릭 수 조작' 논란은 국민의힘의 공세에 '제 2의 드루킹 사건'으로 비화하려다, 당내 자제 경고에 동력을 일부 상실했다.
다음의 조작 논란은 지난 1일 아시안게임 축구 8강전을 계기로 시작됐다. 다음 스포츠 페이지의 클릭 응원 건수 약 3130만건 중 중국을 응원한 비중은 93.2%(2919만 건)인 반면, 한국을 응원한 비중은 6.8%(211만 건)에 그쳐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고, 국민의힘도 보조를 맞췄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그간 드루킹 사건을 비롯해 수차례 매크로 논란이 있었음에도 우리나라 주요 포털이 불순한 여론 조작 공작에 무방비 상태에 있다는 건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이처럼 손쉽게 응원 조작이 이뤄지면 선거 조작의 길도 열릴 수 있다"고 했다.
카카오는 이례적인 '클릭 응원'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카카오에 따르면, 클릭 응원에 참여한 IP 5592개가 만든 총 클릭 응원 수는 3031만 8549건이었다. 국내 IP 비중이 95%였으며, 클릭 응원 수는 해외 IP가 만들어낸 것이 86.9%에 달했다. VPN(가상 사설망)을 이용해 우회 접속한 해외 IP가 전체 응원 수를 왜곡한 셈이다.
카카오는 "이용자가 적은 심야 시간대 2개 IP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들어낸 이례적인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왜곡된 응원수'는 일개 네티즌의 장난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지난 2일 새벽 0시 38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VPN Gate 갤러리'에 '축구 응원 주작 중'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것이다.
작성자는 "갖고 있는 서버 총동원령 내리고 셀러리 라이브러리 써서 해볼까. 지금은 2대로 돌리는 중"이라며 "중국 쪽에 몰표 넣는 중"이라고 했다. 이 네티즌의 주장 자체가 거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경찰은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해 즉각 입건 전 조사(내사)에 들어갔지만, 문제를 키웠던 여당 내에서는 되레 '일을 키우지 말자'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비공개 회동에서 '네티즌의 장난일 수도 있으니 일을 키우지 말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을 '이념 대립'으로 키우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의외'인 것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한 이례적인 2개의 IP가 활동하기 전부터 중국을 응원하는 클릭 수의 비중이 과반이었다는 점이다.
해당 논란은 한중 축구 8강전 전반이 끝나기 직전인 지난 1일 오후 10시께, 한경닷컴이 처음 보도("한국 포털 맞아?"…축구 한중전에 中 응원 과반 '기현상')하며 시작됐다. 다음이 찾아낸 '2개의 IP'가 본격적인 여론 왜곡을 시작하기 전부터, 중국을 응원하는 비중이 과반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대표 경기에 대한 국내 포털의 투표라기엔 의외의 결과였다.
당시 네티즌들은 "어떻게 한국 사이트에 중국팀을 응원하는 클릭이 더 많지?", "다음이 한국 사이트 맞나?", "여기 중국 응원이 더 많은 이유는 뭔가요?", "네이버랑 이렇게 다르네"라며 물음표를 던졌다.
다음날 김정식 국민의힘 청년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클릭으로 양국 축구팀을 응원하는 페이지에서 네이버에서는 약 10%, 다음에서는 약 55%가 중국팀을 응원하는 결과가 나왔다"며 "우리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통계가 집계되며 많은 국민께서 의아해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뛰어난 공감능력과 인류애를 가진 우리 국민이기에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얼마든지 중국팀을 응원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초대형 포털에서 과반이 넘는 비율로 중국팀을 응원하는 것은, 분명 보편적인 상식과는 거리가 있는 집계"라고 했다.
그는 또 "최근에는 중국 내 강성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확산으로 ‘자발적 댓글부대’인 ‘쯔간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주요 현안이 아닌 상황에서도 애국심을 표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며 "특정 의도를 가지고 여론을 조작해 국민을 선동하는 세력이 대한민국을 흔들게 놔둘 수는 없다"고 했다.
한중 축구전이 끝난 뒤인 새벽 시간에 중국을 응원하는 비중이 93%까지 치솟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뒤늦게 알려진 것으로, 그 전부터 '여론 조작'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던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 통화에서 "딱 봐도 '조작이오' 티가 나는 여론 조작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교묘한 방법으로 이뤄지는 개입"이라며 "이번 논란을 계기로 국내 포털 여론이 조작될 수 있는지 여부를 철저하게 검증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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