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타임(Elon Time)’이라는 게 있다. 일론 머스크의 시간관념을 풍자한 말이다. 그가 말한 계획은 실제로는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충고다. 그는 2018년까지 우주 관광객 두 명을 실어 달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미국 뉴욕과 중국 상하이를 40분 안에 주파하는 로켓 여객기를 10년 내에 내놓겠다고도 했다. 그의 스페이스X는 인류 우주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를 허풍이라고 나무라진 말자.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그의 말은 사실 신뢰하긴 어렵다. “완전 자율주행차를 2년 안에 완성할 수 있다”(2015년), “5년 내 자율주행차가 도입되고 실직자가 증가한다”(2017년), “내년 말 고객을 만날 것이다”(2019년), “올해 출시된다.”(2020년) 자율주행차 개발과 관련한 그의 어조는 2021년 확 바뀌었다. “일반화된 자율주행은 어렵고 인공지능(AI)의 큰 부분을 풀어야 한다”고 실토했다. 그런 그가 올해 7월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AI 대회 개막식에서 동영상으로 축사를 하며 입장을 바꾼다. 올해 말 완전자율주행 기술 구현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는 테슬라의 자율주행기술이 미국 도로에서 테스트까지 마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
“이것은 추측이나 올해 말 완전 자율주행 또는 4~5레벨의 자율 주행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비슷한 예측을 몇 번 했고 그 예측이 완전히 정확하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근접해 있다고 생각한다.”
머스크는 완전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해 사기 혐의로 테슬라 주주들에게서 피소를 당했다. 테슬라의 최대 강점이자 주가 상승 열쇠는 자율주행에 있다. 테슬라는 다른 회사들보다 일반 운전자가 타는 차량에서 자율주행에 근접한 운행 정보를 손쉽게 대량으로 수집한다. 이런 대량 데이터를 슈퍼컴퓨터에 넣어 AI를 학습해 완전한 자율주행에 근접하려 한다. 테슬라는 구글이나 GM처럼 라이다·레이더 같은 별도 센서를 쓰지 않는다. 카메라 정보만 갖고 자율주행 AI를 구현하려 한다. 그는 9월 출시된 자서전에서 이런 말도 했다.
“로보택시는 테슬라를 10조달러 규모의 회사로 만들 제품이다. 사람들은 100년 뒤에도 이 순간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현재 1조달러가 되지 않는다. 운전석도 없는 로보택시가 출시된다는 그의 말을 믿고 테슬라에 장기 투자해야 할까? 주가가 10배는 간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건 대한민국 최고경영자(CEO)의 화법과 거리가 멀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방식에 의문을 품는 전문가도 많다. 테슬라의 주행 보조 장치(FSD·full self driving)는 경쟁사의 운전지원시스템보다 월등히 뛰어나지만 완전한 자율주행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로보택시가 보급될 것이라 말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머스크에 대한 세간의 선호는 갈린다. 허풍은 있었지만 차곡차곡 자신의 시간을 채워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삶의 궤적은 어쩌면 무질서하다. ‘일론의 시간’이란 세간의 견해에 반해 꽤 질서정연하다고 하면 틀린 말일까? IT 전문잡지 와이어드는 머스크의 1년은 일반인의 8년에 해당한다고 했다. 마치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개의 생애주기와 비슷하다고도 덧붙였다.
머스크는 많은 일을 해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계획도 기존에 세운 사업들을 더 잘되게 했다. 그는 21세기 전기차와 태양광발전 시대를 이끌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도 해내지 못한 재활용 로켓 시대를 열었다.
우리 민족은 유목민의 피를 이어받았다. 지금 저성장 시대에 필요한 게 있다. 머스크처럼 시간을 안 지켜도 좋다. 시장의 침체를 다시 타오르게 할 최고경영자의 말, 즉 불쏘시개가 필요하다. 머스크의 어머니는 자녀교육 철학으로 ‘노마드’를 꼽았다. 유목민처럼 어떠한 제약 없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세상에 맞서라고 했다. 머스크 자신도 스스로를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와일드 카드)이라고 인정했다. 이게 그의 사업영역을 지구에서 우주로 개척한 원동력이다. 최고의 혁신가는 규격이나 획일화와 거리가 멀다. 자기와 세계에 대한 확신이 머스크에게는 있고 우리에게는 없다. 일론 타임은 하나의 프로젝트에만 두면 과장되게 들린다. 투자나 경영에서 장기적으로 그의 말이 정확히 맞다고 하면 과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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