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용의 EU확대경] EU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세 가지 유의점

입력 2023-10-08 17:32   수정 2023-10-09 00:11

유럽연합(EU)의 그린딜 정책을 대표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지난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제 철강, 알루미늄 등 6개 품목을 EU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바이어를 통해 탄소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 전환기간이 끝나는 2026년부터는 실제 탄소배출권을 구입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2022년 기준 규제 대상 품목의 EU 수출이 51억달러에 달해 국내 기업 수출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당장 첫 보고를 앞둔 기업들은 그 과정에서 영업기밀이 누설될 우려가 있어 보고채널을 소수 바이어로 단순화하고 보안서약을 체결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발등에 떨어진 불 못지않게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으나 향후 우리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쟁점들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 대상 품목의 확대 가능성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 입법 과정에서 유럽의회가 화학, 플라스틱 등 다른 탄소배출 산업으로 확대를 강력히 주장했으나, 집행위원회가 아직 영향 평가가 안 됐다고 반대해 잠정 제외됐다. 유기화학품과 폴리머 등의 제품은 평가가 완료되는 대로 2026년 또는 그 이후에라도 포함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둘째, 간접 배출 문제다. 제품 제조 과정에서 직접 발생되는 탄소뿐 아니라 생산공정에 들어간 에너지의 탄소배출량까지 산정에 포함하겠다는 의미다. 다행히 민관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우리 주력 수출품인 철강,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간접 배출이 제외됐다. 그러나 전환기간 중 보고의무에는 간접배출량이 포함돼 여전히 불씨가 살아 있다. 더욱이 탄소국경조정제뿐 아니라 배터리 규정, 에코디자인 규정, 원자재법 등 EU가 추진 중인 산업 관련 정책에 탄소발자국을 보고하게 돼 있어 데이터가 축적된 뒤 새로운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프랑스가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개편하며 운송을 포함한 전 과정의 탄소 점수를 매기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런 우려를 더하고 있다.

셋째, 미국·EU 간 진행 중인 철강협상이다. 2018년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과 EU의 보복관세로 촉발된 철강분쟁은 2021년 양측이 관세할당 방식에 합의함으로써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합의가 이달 말 만료됨에 따라 새로운 협상이 한창이다. 이 협상은 글로벌 철강시장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향후 탄소배출 규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양측 모두 탄소규제에는 공감하나 기존과 같이 관세를 통한 규제를 선호하는 미국과 탄소국경조정제도 확산을 요구하는 EU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양측의 산업 환경,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입장 차로 이달 말까지 합의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지만 이제 막 시작된 탄소규제가 EU를 넘어 어떻게 자리잡아 갈지 그 방향성은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탄소를 매개로 교역의 판이 바뀌고 에너지의 질이 수출 경쟁력이 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당장의 탄소규제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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