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속 헤롯왕의 의붓딸이자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는 데카당스(퇴폐주의)를 대표하는 여성 캐릭터다. 데카당스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말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행한 문예 경향.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프랑스어로 쓴 단막 희곡 ‘살로메’(1891)와 이 작품에 감명받은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05년 완성해 초연한 동명의 단막 오페라는 살로메를 ‘팜파탈의 대명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살로메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착하고 매력적인 소녀 정도로 짧게 등장한다. 하지만 희곡과 오페라 속 살로메는 자신의 정념과 탐욕을 못 이겨 세례 요한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파멸로 몰고 간다. 와일드의 탐미주의적 경향과 세기말 유럽의 퇴폐 정서가 반영된 캐릭터다. 슈트라우스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유도 동기 등 바그너식 악극 어법, 당시로선 불협화음처럼 들린 특유의 화려하고 전위적인 관현악법(오케스트레이션)으로 이런 살로메의 특성을 더 잘 살려냈다. 특히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음악에 맞춰 헤롯의 넋을 빼놓는 ‘일곱 베일의 춤’과 머리가 잘린 요한의 입술에 키스하며 속내를 털어놓는 아리아 두 곡을 연이어 부르는 장면은 와일드의 원작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6일 제20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으로 오스트리아 출신인 미하엘 슈투르밍어 연출의 ‘살로메’가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랐다. 대구에서 이 작품의 전막 공연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슈투르밍어 연출 버전이 초연된 건 2016년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극장에서다. 이때 살로메로 출연한 소프라노 안나 가블러가 이번에도 주역을 맡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오페라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슈투르밍어가 현대적인 배경으로 재해석한 ‘살로메’는 신선함을 넘어 파격적이었다. 원작 자체가 선정적이고 엽기적인 ‘살로메’ 공연이지만 이번 공연에선 다른 방식으로 파격적이었다. ‘일곱 베일의 춤’과 요한의 시체가 등장하는 피날레 등 대표적인 장면의 설정과 내용이 원작과 크게 달라졌다.
1980년대 이전까지 ‘일곱 베일의 춤’은 전문 무용수가 살로메 대역으로 일곱 베일만 감고 나와 차례로 벗는 춤을 추고, 이후 소프라노가 직접 스트립 댄스를 추는 게 대세였다. 이번 공연에선 살로메가 춤추는 공간이 다수가 지켜보는 연회장이 아니라 헤롯만 있는 둘만의 밀실로 바뀌었다. 헤롯이 살로메의 춤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춤을 춘다. 거의 누드에 가깝게 옷을 벗는 것도 살로메가 아닌 헤롯. 둘이 묘한 자세를 취하며 끝나는 춤은 관객 각자가 야릇한 상상을 하게 한다.
살로메가 헤롯에게 바란 소원이 마침내 이뤄지는 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요한의 잘린 머리를 담은 은쟁반이 아니라 목을 자르다 만 듯하지만 온전히 몸에 붙어 있는 시체다. 살로메는 ‘일곱 베일의 춤’ 마지막 장면에서 헤롯에게 취한 자세 그대로 요한의 시체 위에 앉아 입술에 키스를 퍼붓는다.
두 장면 모두 ‘살로메’의 다양한 버전을 관람한 관객이라고 해도 상상하지 못했을 법한 새로운 설정이다. 참신한 시도라며 환영할 수 있겠지만, 극적 완결성과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겠다.
이들 장면의 호불호에 따라 원작과 정반대로 마무리되는 피날레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것 같다. 피날레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헤롯은 살해당하고, 살로메는 살아남는다”이다. 원작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성서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슈투르밍어 연출의 ‘살로메’ 버전은 태생지인 오스트리아에선 음악극상 최우수 오페라 작품상까지 받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헤롯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후반부 내용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회전 무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현대적 배경에 맞춰 그럴듯하게 각색한 전반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살로메 역의 가블러를 비롯해 헤롯왕 역의 테너 볼프강 아블링어 슈페르하크, 세례 요한 역의 바리톤 이동환, 경비대장 나라보트 역의 테너 유준호 등 주요 배역을 맡은 성악가들의 안정적인 가창과 몰입도 높은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대구=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