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찾은 경남 의령군. 인근을 따라 흐르는 남강과 마두산을 낀 장내마을(부자마을) 한복판에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삼성을 세운 이병철 회장의 사업 밑천 마련과 경영 구상이 시작된 곳이다. 호암 생가는 삼성 태동의 현장을 보기 위해 몰린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호암 생가에서 기업가정신 배우자”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자리 잡은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일대. 기와집 수십 채가 모여 있다. 이 마을 외곽 공영주차장(부자주차장)과 호암 생가를 잇는 길은 ‘부자길’로 불린다.호암 생가는 1851년 이병철 회장의 조부가 1907㎡ 부지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다. 이병철 회장은 결혼해 분가하기 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등으로 구성됐다. 이곳은 호암재단이 관리하다가 대대적으로 보수해 2007년 11월 19일 일반에 개방했다. 이후 이병철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무형 호암생가관리소장은 “주말엔 하루 500~600명이 이곳을 찾는다”며 “추석 연휴에는 하루 1000명 넘게 인파가 몰렸다”고 귀띔했다.
호암 생가에 들어서자 우물과 그 뒤로 배치된 사랑채가 눈길을 끌었다. 사랑채 뒤편엔 안채가 있다. 안채 뒤로는 마두산 끝자락이 펼쳐진다. 안병섭 의령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생가 곳곳에 이병철 회장이 좋아한 벽오동이 많다”고 설명했다.
생가 오른쪽 옆 기와집은 이병철 회장이 17세 때 박두을 여사와 결혼해 분가한 곳이다. 이 본가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종종 이곳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통에도 꺾이지 않은 사업보국 신념
1934년 일본 와세다대 정경과에서 유학하던 이병철 회장은 건강이 나빠지자 본가로 돌아왔다. 그는 쌀장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부친에게서 쌀 300석을 받았다. 이 쌀은 삼성그룹을 세우는 ‘종잣돈’ 역할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1936년 봄 경남 마산(현 창원)에 협동정미소를 열었고 운송업에도 진출했다. 1938년엔 대구로 가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를 세웠다. 이후 비료·섬유·전자 사업을 하나씩 일궈나갔다. 1978년엔 반도체산업에 진출하면서 한국 첨단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이병철 회장은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기업인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그의 생애를 짓눌렀다. 6·25 전쟁과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등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꺾이지 않았다. 1953년 6·25 전쟁 당시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제일제당을 세우며 설탕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병철 회장은 ‘사업으로 나라에 공헌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신념을 바탕으로 혹독한 경영환경을 극복했다. 인재 제일, 합리 추구 등의 경영철학을 앞세운 그는 한국 경제의 도약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이병철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알리기 위한 여러 사업을 준비 중이다. 정부와 의령군은 솥바위와 호암 생가를 기업가정신 관련 관광코스로 개발할 계획이다. 의령군은 솥바위와 호암 생가 사이 8.5㎞ 뱃길을 연결하는 ‘의령 남강 뱃길 사업’을 추진한다. 배를 타고 솥바위와 호암 생가 뱃길을 두 시간가량 왕복하는 관광사업이다.
의령군은 지난해 10월 부자 기운이 흐른다는 솥바위 인근에서 ‘리치리치페스티벌’을 처음 열었다. 부자 기운을 나누자는 취지다. 지난해 행사에는 군 인구(2만5000명)의 네 배에 달하는 1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올해도 6일부터 나흘간 행사가 열렸다.
의령=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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