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들러리 참가'도 담합…법원 "경쟁 없더라도 위법"

입력 2023-10-09 18:24   수정 2024-10-05 20:28

이른바 ‘들러리’ 역할로 입찰에 들어갔더라도 다른 참여기업과 사실상 같은 내용의 제안서를 냈다면 담합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들러리 입찰 행위가 다른 업체들의 경쟁을 방해하지 않았더라도 정부가 해당 기업의 입찰 참가를 제한한 것엔 문제가 없다고 봤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강동혁)는 의료기기 제조업체 A사가 조달청을 상대로 낸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 취소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A사는 동종업계 기업인 B사의 부탁을 받고 2019년 6월 조달청이 공고한 ‘2019년도 의무 장비 구매 입찰’에 참여했다. 두 기업은 입찰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같은 내용의 제안서를 냈다. 이 입찰에 참여한 기업은 A사와 B사 두 곳뿐이었다.

참가기업 두 곳이 사실상 같은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입찰은 유찰됐고, 조달청은 A사와 B사가 입찰 담합을 했는지 심사해달라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요청했다. 공정위는 약 3년간의 심사 끝에 지난해 4월 “두 기업이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합의했다”고 결론 내렸다.

조달청은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그해 8월 A사에 3개월간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는 처분을 내렸다. A사는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사 측은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한 업체가 다른 업체들의 공정한 경쟁 행위를 방해하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쟁제한성’이 있어야 담합”이라며 “당시 입찰에선 B사가 아닌 다른 기업이 낙찰받긴 어려운 현실이었고 다른 기업이 입찰에 참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경쟁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경쟁제한성이 없더라도 담합 행위로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B사의 낙찰을 위해 B사와 상의한 A사의 행위는 국가계약법에서 규정하는 담합”이라며 “이는 경쟁입찰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해 국가의 재정 손실을 유발하고 조달물품의 품질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계약법은 특정인의 낙찰을 위해 입찰자들이 서로 상의하는 것을 담합으로 규정한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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