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화가] 조롱과 비난 쏟아졌던 실험미술 선구자 정강자

입력 2023-10-10 18:34   수정 2023-10-11 01:08

정강자 작가(1942~2017)는 1968년 서울 서린동 음악감상실 ‘쎄씨봉’에서 벌인 퍼포먼스 ‘투명풍선과 누드’로 당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칼을 든 사람들이 정 작가의 옷을 찢어 벗긴 뒤 투명풍선을 붙이고, 이를 터뜨려 그의 벗은 상반신을 드러나게 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 작가는 참신한 발상의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던 유망 작가였다. 이 퍼포먼스로 미술계와 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여성 해방을 주장하려는 게 그의 의도였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주간지들은 이를 선정적 이슈로 다뤘다. 한 여성지는 송년 특집에서 그에게 ‘발광상’을 주며 조롱했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는 1970년 열린 그의 개인전에 철거 명령을 내렸다. 충격을 받은 정 작가는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그가 다시 국내에서 활동을 재개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미쳤다’는 얘기를 들었던 그의 실험적 예술은 지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에는 그의 작품 ‘키스미’가 맨 앞에 있다. 10월 11~1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주요 여성 작가를 기리는 ‘모던 우먼’ 섹션에도 그의 작품이 대거 나온다. 정강자는 11명의 참여 작가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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