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조치를 두고 여야 간 공방이 내내 이어졌다. 다른 현안에 대한 논의는 거의 오가지 않고 이 분야에 질의가 집중됐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국감 모두발언에서 "R&D 예산이 양적으로 성장한 것에 비해 질적 성장은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 각계가 동의하고 있다"며 "R&D 나눠먹기, 소액·단기 과제 뿌려주기, 주인이 정해져 있는 사업 등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어 "낡은 관행과 비효율을 걷어내고, R&D 다운 R&D를 할 수 있게 생태계를 조성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7월 말 내년 주요 R&D 사업을 올해보다 3.4조원 감액한 21.5조원을 편성한다고 밝혔다. 올 기준 31.1조원에 달하는 정부 R&D 사업은 과기정통부가 배분하는 주요 R&D 사업과 기획재정부가 배분하는 일반(재정) R&D로 나뉜다.
주요 R&D는 이공계 대학과 출연연구기관, 국공립연구소 등이 하는 기술개발 사업(기초·응용·개발 연구) 등을 말한다. 일반 R&D는 주로 대학 지원금으로 구성된다. 내년 R&D는 25.9조원으로 편성됐다. 올해 대비 감축분 5.2조원(31.1조원-25.9조원) 가운데 주요 R&D 감축분은 3.4조원, 일반 R&D 감축분은 1.8조원이다.
국감이 시작되자마자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장관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 고민정 의원, 대법원에서 유죄판결 확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최강욱 전 의원의 비례대표 자리를 이어받은 허숙정 의원, 민형배 의원 등이 이 장관을 상대로 "R&D 삭감은 부당한 일"이라고 공격했다. 민 의원은 "지난 6월 말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심한 욕설로 장관을 질책한 것이 사실이냐. 이 때문에 R&D 예산 삭감을 서둘러 추진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 장관은 "근거가 있는가. 제가 의원님께 자료를 요청해도 되는가"라고 되받았다.
이정문 의원은 "예산 삭감액 규모 1~3위 사업이 모두 디지털, 소프트웨어(SW) 사업"이라며 "디지털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윤석열 정부 공약이 의심스럽다"고 물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일반회계 자금을 받는 '디지털 격차 해소 기반조성 사업'은 올해 895억1000만원이었으나 내년 71억7900만원으로 무려 823억3100만원 삭감됐다.
그 다음으로 감액 규모가 큰 것은 정보통신진흥기금으로 추진하는 'SW산업 기반 확충' 사업이다. 올해 953억4300만원이 내년 322억7100만원으로 630억7200만원 감소했다. 방송통신발전기금 지원을 받는 '데이터기반 산업 경쟁력 강화' 사업 예산은 내년 602억원으로 올해 1063억3500만원보다 461억3500만원 감소했다.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허은아 의원은 "R&D 예산 감축에 대해 과학계에 좀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허 의원은 "한국이 산업화를 이루고 눈부신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기술인 덕"이라며 "지금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는게 이 분들 때문이라면, 좀 더 과학기술인들에 대해 예우를 했어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박성중 의원은 "R&D는 눈먼 돈,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말이 파다하다"라며 "정부 R&D 예산은 국민의 소중한 세금, 피같은 돈인데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너무 급격히 늘어 낭비적 측면이 굉장히 커졌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지금 단계에서 반드시 비효율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인 과학계가 이렇게 난리를 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이 경제와 산업을 넘어 외교와 안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기술패권 경쟁시대를 맞아 R&D 제도 혁신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구혁채 과기정통부 기획조정실장은 "R&D 사업의 성과 부진, 낭비적 요소가 있는 사업을 대상으로 면밀한 예산 점검을 할 것"이라며 "R&D 평가의 온정주의를 타파하고, 상대평가를 전면 도입해 하위 20% 사업은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조승래 의원은 "출연연구기관이 올해와 같은 비정규직, 학생연구원 인력 규모를 내년에도 유지하려면 출연연구기관의 적립금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청년 연구직에 대해서는 일반회계 항목으로 별도 보전 조치를 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살펴서 문제없이 하겠다"고 답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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