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대책을 통해 인바운드 창업(외국인의 국내 창업)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K창업에 도전하는 외국인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가 아이템을 찾은 창업자부터 정부 프로그램을 활용해 국내 진출을 시도하는 해외 창업팀 등 다양한 형태의 외국인 창업이 등장하고 있다.
11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에듀테크 회사인 태그하이브는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SDC)에 스타트업 대표로 참가했다. 태그하이브는 한국 유학생이었던 인도 출신 판카즈 아가르왈 대표가 삼성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C랩을 통해 한국에서 창업한 회사다. 일선 학교에서 쓸 수 있는 학습 도구를 개발해 한국과 14억 인구의 인도를 동시에 노렸다. 아가르왈 대표는 “한국의 IT(정보기술)와 태그하이브의 글로벌 역량을 결합해 전 세계 학생들이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IT 전문가 도미닉 다닝거 대표가 창업한 포장 솔루션 회사 프로보티브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됐다. 비아시아계 외국인이 창업한 회사가 팁스에 뽑힌 건 프로보티브가 처음이다. 다닝거 대표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한국 포장 산업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창업했다. 이 회사는 주주도 전원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다닝거 대표는 “제2의 고향인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했다.
외국인 창업 커뮤니티 ‘서울 스타트업스’를 운영하는 폴란드 출신 마르타 알리나 사우스벤처스 이사는 “한국은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테스트해 보기에 적합한 시장”이라고 했다. 정부 차원에서 딥테크 산업 지원을 늘리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지난해 스타트업 지놈이 발간한 글로벌 창업생태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280개 도시 중 서울은 스타트업 하기 좋은 도시 10위에 올랐다. 15위 파리, 16위 베를린, 18위 싱가포르보다 높다. 정부 주도의 투자 생태계가 잘 구축돼 있어 자금조달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한 덕이다.
의료 서비스 회사 클라우드호스피탈을 세운 투르크메니스탄 출신 나자로브 술레이만 대표는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MBA)을 마쳤다.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가 해당 국가 내에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회를 보고 세계 환자들과 한국, 싱가포르, 태국, 인도 등의 병원을 연결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해외에 본사를 둔 외국 기업이 한국 법인을 세우고 국내 사업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AI 영어 학습 앱 ‘스픽’ 운영사인 스픽이지랩스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본사로, 미국인 코너 즈윅 대표가 창업했다. 글로벌 스타트업이지만 영어 교육열이 높은 한국이 주요 서비스 지역이다.
독일의 대체 수산물 스타트업 코랄로도 한국 법인을 세우고 한국을 거점으로 아시아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코랄로는 버섯 균사체로 대체 생선살을 만드는데, 막상 독일은 관련 규제가 엄격해 한국을 테스트 마켓으로 검토 중이다.
외국인 창업자들은 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폐쇄적인 문화가 걸림돌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서울 스타트업스가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창업자들은 △언어 장벽 △투자유치 기회 부족 △사업 파트너 구인 난항 등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특히 한국 벤처캐피털(VC) 업계는 학연 지연 등 인적 네트워크 의존도가 높아 언어 장벽까지 있는 외국인 창업자가 투자를 유치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관리는 법무부, 창업은 중기부, 유학생 관리는 교육부 등 외국인 창업 담당 부처가 쪼개져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알리나 이사는 “아이템과 기술력을 갖춘 외국인 창업자가 있어도 국내 VC와 기업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투자를 꺼린다”며 “정부가 외국인 창업자를 데려오라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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