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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반도체 관련 화학 기업들이 연달아 유럽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 내 반도체 공급망이 노후화되면서 경쟁력이 떨어진 틈을 노린 것이다. 맏형 격인 TSMC가 유럽에 설비를 구축하며 파급효과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대만의 반도체 관련 화학기업 LCY그룹은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독일에 신규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LCY그룹은 TSCM에 반도체 세정제와 반도체 용제를 공급하는 기업이다. LCY그룹을 비롯해 TSMC와 연관된 대만의 화학기업 3곳도 유럽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대만 기업들이 앞다퉈 유럽 진출에 검토한 배경에는 지정학적 위기가 있다. 대만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반도체 공급망이 불안정해질 것이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유럽 내 반도체 생산량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만 기업이 유럽에 몰렸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유럽연합(EU)의 유럽 내 공공 및 민간 반도체 생산시설에 430억 유로(약 61조원)를 지원하는 법안이 통과되자 반도체 기업이 유럽 생산설비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TSMC는 독일에 첫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밝힌 바 있다. TSMC는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 반도체 기업 인피니온, 네덜란드의 NXP 등과 함께 조인트벤처를 세워 5조원 규모의 공장 건설에 참여한다.
미국의 인텔도 300억 유로를 들여 독일 드레스덴에 반도체 생산설비를 확장하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ST마이크로일레트로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도 프랑스에 57억유로 규모의 설비를 증축할 계획이다.
유럽 반도체 공급망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후방 기업이 부족한 상황이다. TSMC와 인텔의 10nm(나노미터) 공정을 지원할 수 있는 화학 기업은 유럽 내에서 찾기 어렵다. 유럽의 대다수 반도체 관련 기업은 28nm 이상의 공정에 치우쳐 있다.
때문에 유럽 내 한 화학기업 CEO는 FT에 "지난 10년간 유럽의 기술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고 토로할 정도다. 마크 리우 TSMC 회장도 지난 6월 유럽과 대만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가장 우려하는 사안"이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유럽 기업의 기술이 낙후되자 대만 기업이 이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LCY를 비롯한 대만 화학기업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빈센트 리우 LCY그룹 최고경영자(CEO)도 FT에 "유럽은 낙후된 기술을 고수한 탓에 반도체 제조 공정이 심각할 정도로 비효율적이다"라며 "LCY의 공장이 완공되면 유럽 시장을 점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유럽 화학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팹리스(반도체 설계)에 집중한 탓에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능력이 퇴보했기 때문이다. 대만에 뒤처진 경쟁력을 단기간에 회복할 수 없다는 비관도 잇따른다.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수율을 제고하기 위한 화학물질 생산 공정을 구축하기 위해선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가서다.
리우 CEO는 "(유럽은) 최첨단 화학물질이 반도체 수율을 얼마나 제고하는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TSMC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양산을 시작하게 되면 큰 차이를 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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