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다가 멀리서 '킥보드'가 보이면 겁부터 나요. 갑자기 튀어나오면 피하기도 어려운데 정말 큰일입니다."
서울 도로 한복판에서 킥보드 탄 사람을 자주 마주한다는 20대 직장인 고모 씨는 "무자비하게 도로를 달리거나, 아슬아슬하게 차 옆을 지나가는 전동 킥보드 때문에 출퇴근길이 두렵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킥라니'는 킥보드와 고라니의 합성어로, 고라니처럼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운전자를 놀래키는 사람을 뜻한다.
킥라니로 차량 주행 시 두려움이 생겨난 건 고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킥보드에 2명이 탑승해 운전을 하는가 하면, '무면허 운전'으로 내달리는 중고등학생들, 안전장치 없이 킥보드에 탑승한 시민 등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전날에는 한 트럭 운전자가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달리던 중, 여중생이 탄 전동킥보드를 피하려다 트럭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여중생은 트럭이 전복된 모습을 보고도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가 시민의 항의에 다시 돌아왔고, 운전자는 골절상 등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온라인상에서 시민들은 "킥보드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생각 없이 도로 한복판을 횡단하고,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하는 킥보드도 많다", "킥보드를 아무렇게나 널브러뜨려놔서 사고를 유발한다" 등 안전대책이 시급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12일 한경닷컴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 관련 사고 건수는 2018년 225건에서 지난해 2386건으로 5년 사이 10배가량 급증했다. 같은 기간 사상자는 225명에서 2386명으로 늘었으며, 이 중 사망자도 4명에서 26명으로 6배 넘게 증가했다.
2021년 5월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 운전자는 만 16세 이상이 취득할 수 있는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를 보유해야 한다. 무면허·음주 운행 시 10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1인용 전동 킥보드를 2인 이상이 탑승하거나 안전모 미착용의 경우에도 2만∼3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대여업체는 무면허자에게 기기를 대여해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에 '무면허 미성년자'도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손쉽게 킥보드를 빌릴 수 있어 안전사고는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25건이었던 20세 이하 킥보드 운전자 사고는 2019년 59건, 2020년 209건, 2021년 628건에 이어 지난해 1096으로 5년 새 약 43배나 뛰었다. 또한 지난해에만 청소년 5명이 킥보드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조사에서 올해 자료는 통계자료로 확정되지 않아 제외됐으나, 킥보드 관련 사고 발생률은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이에 정치권도 나서 전동 킥보드 문제에 대한 특단 대책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회 교통위원회 김혜지 국민의힘 의원은 "공유 킥보드 업체들에 무단 방치에 대한 견인과 면허 인증 의무화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꾸준히 강조해왔다"면서도 "서울시와 의회는 업체의 자정작용을 기대해 주차 구역 확보를 위한 예산 투자와 관련 조례 개정 등의 노력을 했는데 업체들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면허인증 의무화와 보행권 침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파리의 사례처럼 서울시에서도 개인형 이동장치의 운행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라고도 강조했다. 이는 지난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안 이달고 시장이 20개 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동 킥보드 대여 서비스를 지속할지 묻는 주민 투표를 시행한 결과, 반대표가 90%에 달해 결국 관련 서비스를 금지한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
전동 킥보드의 운행과 관련, 조 의원은 "간단한 이동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킥보드가 보편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안전한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사회적 경각심이 제고돼야 한다"며 "특히 심야시간대 무면허?음주운전에 따른 사고는 연쇄 사고의 위험성이 더욱 큰 만큼 단속 강화는 물론 이용자들 개개인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윤종장 서울시 도시교통실장도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가 편리한 친환경 교통수단이지만,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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