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는 모두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대표하는 핀율이 설계했다. 바를 둘러싼 검은색 나무 의자는 1953년 디자인한 ‘리딩 체어’다. 말 그대로 책을 읽는 의자지만 어떤 자세든 편안한 느낌이 들 정도로 몸을 잘 떠받쳐 준다. 주방 입구 쪽에 배치된 ‘사이드보드’는 본래는 수납장이지만 여기서는 카운터 역할을 한다. 사이드보드 안쪽으로는 각기 다른 따뜻한 색상을 입은 6단 트레이 유닛이 슬쩍 보인다. 제 역할을 벗어난 수납장이 오히려 상업 공간의 경계를 낮춘다.
사람이 누워있는 모습을 한 비대칭의 곡선형 등받이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월 소파, 펠리컨이 날개를 접고 있는 모양으로 포근한 느낌을 주는 펠리컨 체어, 단순한 형태지만 섬세한 가공이 돋보이는 재팬시리즈 소파 또한 그 자체로 우아한 오브제가 돼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든다. 핀율의 ‘인사이드 아웃(inside-out)’ 철학은 건축가의 설계가 집과 함께하는 사람을 위한 인테리어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말에 따라 만들어진 가구는 그 자체로 인테리어가 돼 공간을 채운다.
그는 최고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요소를 동원하는 커피경연대회를 경험하면서 더 많은 이에게 똑같이 최고의 커피를 맛보여 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동안 다른 카페들이 현장에서 쉽게 사용하지 않던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추출할 때 초강성 바스켓과 퍽스크린, 종이필터를 사용함과 동시에 추출 압력을 낮췄다. 브루잉할 때는 그가 직접 설계한 얇은 유리 드리퍼를 사용하는데, 에스프레소와 마찬가지로 각 커피가 가진 개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추출한다. 커피 주문부터 추출, 마시는 모든 순간이 분위기에 녹아든다.
핀율은 건축가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건축학도가 됐지만, 꾸준히 가구 디자인을 선보이며 훗날 모국인 덴마크를 넘어 북유럽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아름다우면서도 가구 본연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은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디자인을 만들어 기존 가구 형태의 한계를 무너뜨렸다. 커피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좀처럼 현장에 적용하기 힘든 요소들을 도입하는 패트릭 롤프의 과감함은 핀율의 철학을 커피로 표현하는 것과 닮았다.
치열하게 고민한 두 장인의 산물이 고요한 한 공간에 모여 있다.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들이켜니 집에 온 듯한 익숙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다. 그러니 이 편안함의 이면에 숨겨진 것들이 보인다. 좀처럼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던 바리스타와 가구 디자이너가 선택한 결과물이다. 고요한 아름다움에 한 꺼풀 숨겨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니 아주 먼 곳에 있는 내 집에서 휴가와 다름없는 휴식을 즐기는 기분마저 들었다.
조원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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