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올해 6월 야심차게 내놓은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은 4개월간 약 4200대 팔리는 데 그쳤다. 기아 주력 차종의 한 달 판매량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판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론 비싼 가격이 꼽힌다. EV9은 보조금을 모두 받아도 실구매가가 7000만~8000만원 수준이다. 풀옵션은 1억원에 육박한다.
기아가 12일 ‘2023 EV 데이’에서 ‘중저가 전기차 라인업 확대’를 주요 전략으로 내세운 것도 전기차 확산을 위해선 가격 부담을 낮추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3만5000달러에서 5만달러 사이의 중소형 EV3·4·5 출시를 시작으로 향후 더 저렴한 엔트리 모델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제공해 전기차 대중화를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기아는 3만달러부터 8만달러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전기차 15종을 2027년까지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EV3와 EV4는 내년 초부터 순차 출시된다. EV4 콘셉트는 전면 후드부터 바짝 몸을 낮춘 듯한 날렵한 디자인으로 기존 세단과 차별화된 외관을 자랑했다. EV3엔 기아가 개발한 ‘생성형 AI 어시스턴트’가 최초로 적용된다.
기아는 전기차 가격 인하를 위해 배터리도 다양화했다. EV5는 중국산 모델에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한국산 모델에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장착된다. 두 가지 배터리 모두 중국 업체가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한국으로 들여오는 물류비용까지 고려해도 중국산 배터리를 쓰는 것이 가격 경쟁력이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는 전기차 판매량을 올해 25만8000대에서 2030년 160만 대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한국·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전기차 생산 거점을 8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내연기관차만 생산해온 인도 공장에서도 현지 전략형 엔트리급 전기차 생산을 시작한다.
배성수/빈난새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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