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재정 vs. 확장재정’.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한국에서 잦았던 경제정책의 논쟁거리다. 경제에서만이 아니라 정치 쪽에서도 계속된 상반된 주장이다. 한쪽은 경제가 어려운 만큼 정부 역할을 더 확대하자는 것이다. 즉 정부의 지출을 늘려가자는 게 확장재정론이다. 정부 소유의 국가적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에서 지출 예산을 키우는 방안은 세금을 더 걷거나 나랏빚(국채)을 더 내는 것뿐이다. 예산지출 증가가 복지를 확장하고 경제 발전에 마중물이 된다는 논리다. 반면 긴축을 하자는 건전재정론은 정부 지출을 줄여 공공의 효율화를 꾀하자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국가채무를 줄이지는 못할망정 더 치솟지 않도록 일정 수준에서 관리해 더 어려운 시기를 준비하고, 미래 세대가 짊어질 부담도 줄이자는 것이다. 전년 대비 2.8% 증가한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기다린다. 예산지출을 줄일 때인가, 더 늘일 상황인가. 긴축재정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가.
정부의 지출예산 확대는 경제 살리기에서 마중물 역할을 한다. 대공황 때인 1933년 미국의 뉴딜 정책은 정부가 나서서 지출을 확대함으로써 경제적 난관을 극복한 대표적 사례다. 케인스를 비롯해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 촉구한 경제학자도 많다. 불경기 때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돈이 돌고 사업이 일어나게 해야 하는 것은 기본 원칙이다. 현대 국가에 필요한 각종 복지 프로그램부터 도로·댐·공항·항만과 도시 기반시설 등 SOC(사회간접자본)를 확충해나가면 그 과정에서 돈이 돌고 일자리가 생긴다. 그렇게 건설된 각종 SOC 시설은 보다 나은 경제 산업을 위한 밑바탕이 된다. 어렵다고 정부까지 지출을 줄여버리면 경기는 더 위축될 것이다. 그런 ‘수축 경제’의 악순환을 막는 게 중요하다. 복지 프로그램도 국가 사회의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실업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소외계층과 같은 경제적 약자는 어떻게든 돕지 않을 수 없다. 복지제도를 사회적 안정망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급증하는 국가채무를 적정선에서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기가 나쁘면 법인세를 위시해 소득세 등 주요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 만큼 세금 정책에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계도, 기업도 어려워지면 빚을 내는 것처럼 정부 역시 어려울 때 빚(국채 발행)을 낼 수 있다. 그렇게 위기를 넘겨야 한다.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못 된다. 나라 살림이 최근 몇 년 새 너무 팽창했고, 때로는 방만한 지출이 많아졌다. 쉽게 말해 부실 재정으로 인해 정부가 빚쟁이가 되어 있다. 1000조 원이 넘는 국가채무가 2024년 예산이 지출되는 내년에는 1196조 원으로 늘어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정부 예산안이 연평균 8.7%씩 늘어오면서 나랏빚이 급증했다. 이 기간에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3%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정부 지출이 얼마나 많았는지 바로 비교된다. 세금 증가율 7.2%는 선진국 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두 번째로 높다. 각종 복지 프로그램 확대와 공무원 늘리기 등 ‘큰 정부’를 지향하면서 예산 지출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급증했다. 의료보험 적용 항목을 늘린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재정에 구멍이 났고, 정부가 지원해줘야 할 몫도 커졌다. ‘관제 일자리’ 등 고용정책에서의 예상치 못한 지출, 외국인 근로자에게까지 실업보험 혜택을 과도하게 제공하면서 구멍 난 고용보험기금 국고 지원도 계속해서 증가했다.
한번 도입한 복지를 없애기도 어려운 데다 늘어난 공무원들에 대한 연금부채 등으로 정부의 의무 지출도 급증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공공부문부터 허리띠를 조여야 한다. 국가채무는 모두 미래 세대 몫이다. 그래도 지출을 마구 늘리려는 정치권의 행태는 그대로 포퓰리즘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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