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소설가] 기성도덕에 반기 든 '비트세대의 제왕'

입력 2023-10-13 18:13   수정 2023-10-14 02:08

1951년 4월 잭 케루악이 타자기 앞에 앉았다. 29세였던 그는 미국 뉴욕에 살았다. 두 번째 소설을 쓰려던 참이었다. 종이를 갈아 끼우는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두루마리처럼 종이를 길게 이어 붙였다. 3주 동안 집중적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다. 완성했을 때 종이 길이는 36m에 달했다.

출간은 쉽지 않았다.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난 실험적 작품이어서다. 외설적인 표현도 많았다. 1957년이 돼서야 수정을 거쳐 출간됐다. 책 제목은 <길 위에서>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무명 작가인 케루악은 단숨에 ‘비트 문화의 제왕’으로 등극했다.

케루악은 192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났다. 1940년 컬럼비아대에 입학했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갖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작가 윌리엄 버로스, 닐 캐시디, 앨런 긴즈버그 등과 미국 서부와 멕시코를 도보 여행했다. 이때의 체험이 <길 위에서>의 바탕이 됐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즉흥적인 문체와 자유롭고 열정적인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 소설은 당대의 젊은이들이 미국 사회의 물질주의와 고루한 기성 도덕에 반기를 들게 했다. 진정한 자유와 새로운 깨달음을 찾아 길 위로 나서게 했다.

최근 그의 자전적 소설 <빅 서>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로 출간됐다. 케루악이 캘리포니아의 빅 서 해변에서 보낸 1961년 가을, 단 열흘 동안 쓴 작품이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실존적 낯섦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정신이 쇠퇴해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그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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