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자문기구인 보건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는 보험료율을 12%로 인상하더라도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면 기금 고갈시점이 5년 늦춰지는 데 불과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같은 내용의 ‘더 내고 더 받는 안’이 도입되면 연금 지출 확대로 인해 70년 뒤 9100조원의 누적적자가 발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5일 재정계산위에 참여하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에 따르면 재정계산위 최종보고서에 포함되는 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50% 인상안은 기금 고갈시점을 2060년으로 연기하는 효과를 낸다. 현행 제도(보험료율 9%·2028년 기준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했을 때 보다 5년 늦게 기금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의 연금개혁도 재정안정 효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실상은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 위원은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누적적자가 7752조원(2092년 기준)인데 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50%안에 따르면 누적적자가 1404조원 늘어나 2093년 총 적자액은 9100조원을 돌파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가 2060년까지 유럽연합(EU) 회원국의 GDP 대비 연금 누적적자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상당수 회원국이 현재보다 누적적자가 줄고 있어 우리나라와 크게 대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재정계산위는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인한 재정부담 영향을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최종보고서에 포함하기로 지난 13일 마지막 회의에서 합의했다. 단순히 기금 고갈시점을 표기하는 것을 넘어 고갈 이후부터 2093년까지 누적적자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을 시나리오별로 표기하자는 것이다. 윤 위원은 “국민연금 개혁의 목적이 장기간에 걸친 재정안정화인 만큼 재정추계 시 자동으로 계산되는 이 수치를 정부에 제출하는 최종보고서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윤 의원은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뒷받침하는 근거에도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회의에선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여도 GDP 대비 연금지출액이 2093년에 11% 밖에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왔다”며 “하지만 비교 대상국과 마찬가지로 기초연금, 특수직역연금 등을 포함하면 이 비율은 15%를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제와 달리 비율을 축소해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최종보고서에는 제대로 된 비교 지표가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재정계산위가 최종보고서 작성을 마치면 국민연금 개혁의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간다. 보건복지부는 재정계산위 보고서를 토대로 정부안을 만들어 이달 말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가 ‘총선의 시간’을 맞은 데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개혁안으로는 연금개혁을 위한 동력을 확보하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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