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커피챗(가벼운 정보형 티미팅)'은 스타트업 업계의 대표적 문화가 됐습니다. 부담 없이 서로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국내 시장에 빠르게 정착했습니다. 커피챗 확산에는 동명의 서비스가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직접 커피챗 문화를 들고 귀국한 박상우 커피챗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국내에서 또 다른 형태로 정착하고 있는 커피챗 문화를 대상으로 '연봉어택' 등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커피챗 문익점' 박 대표의 이야기를 한경 긱스(Geeks)가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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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이 없는 사람끼리 카페에 만난다. 대화 시간은 약 20분. 주제는 다양하다. 직무 전환을 원하는 직장인이 희망하는 업계 재직자를 만나 조언을 얻기도 하고, 채용 담당자가 인재를 만나기도 한다. 미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커피챗 문화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쌍방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는 것을 강조한다. 어떤 구속력도 없으니 대화는 허심탄회해진다. 코로나19를 지나며 비대면 방식까지 보편화됐다.
커피챗이란 단어가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통용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국내 포털 등지에서 커피챗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 2021년 초부터다. 동명의 서비스 ‘커피챗’은 용어 정착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상우 커피챗 대표는 “한국의 커피챗 문화는 특히 채용 분야에서 쓰이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며 “필요한 인재를 기업이 먼저 찾아 움직이는 기조가 정착되고 있어 커피챗 문화는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피챗' 언급 50배 늘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커피챗과 관련한 언급은 2021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어난다. 박 대표는 “국내 커피챗 문화가 자사 서비스만으로 퍼졌다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면서도 “2020년 이전까지 커피챗에 대한 온라인상 언급이 없고고, 언급량이 늘어난 시기가 각각 서비스 출시, 투자유치 마무리, 브랜드 캠페인 등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우리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커피챗을 “다양한 의미로 확산할 수 있는 파급력을 가진 문화”라고 정의했다. 포털에서 커피챗에 관한 언급은 2년 전과 비교해 약 50배 늘어난 상태다. 스타트업과 정보기술(IT) 재직자들 사이에선 이미 일반적인 비즈니스 용어로 잡았다.국내서 처음으로 관련 서비스를 시작했던 박 대표는 원래 스타트업 업계와 거리가 멀었다. 1988년생으로 한국외대에서 영어학을 전공한 박 대표는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재보험에서 사회 경험을 시작했다. 2015년부터 보험계약 인수 여부를 확인하는 ‘언더라이터’ 직무로 일했다. 높은 연봉에 안정성과 복지가 좋아 취업 준비생에 인기인 직장이지만, 박 대표는 점차 답답해졌다. 5년쯤 지나자, 자신이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까지 받았다. 그는 “재보험 산업이 탄탄한 것은 맞지만, 우아한형제들을 필두로 한 수많은 스타트업이 자고 일어나면 규모가 몇 배씩 커지고 있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커리어 전환을 위한 선택은 경영전문대학원(MBA) 진학이었다. 2020년 초, 세계적 명성을 지닌 프랑스 인시아드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제일기획을 다니던 아내와 함께했다. 입학하자마자 한 달 만에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친 것은 변수였다. 기대했던 수업은 모두 비대면으로 전환됐고, MBA에서 만날 다양한 인맥을 기대했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그때 학교의 취업 지원 관련 담당자를 통해 들었던 단어가 커피챗이었다. 글로벌 유수의 직장인이 모였던 프랑스 MBA답게, 커피챗 문화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박 대표도 커리어 플랫폼 '링크드인'의 메시지 200개를 보내 한 인슈어테크(보험+기술) 스타트업의 C레벨과 첫 커피챗을 나눌 수 있었다. 박 대표는 “부담없이 먼저 서로가 대화를 나눠본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면서도 “만남이 어려웠던 것은 해결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주변 학생들도 만남 성사 자체를 어려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기업 50人'과 시작된 커피챗?
코로나19가 심해지고, 사람을 만나기 더 어려워지면서 그는 커피챗 문화에 대한 흥미가 더 커졌다. 때마침 모든 미팅의 방식은 비대면 플랫폼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한국으로 귀국해 만남이 성사되는 확률을 끌어올려보고, 실제로 주변 사람의 반응을 얻어보는 실험이라도 해보고 싶어졌다. 곧바로 그해 가을 휴학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및 빅테크에 재직하는 지인 50명을 플랫폼 파트너로 끌어모았다. 박 대표는 “커피챗이란 용어도 쓰이지 않던 시기, 블로그를 만들어 사람들을 연결시켰고, 과금 모델도 적용해봤다”며 “실체도 정보도 명확하지 않는 데도 기꺼이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것을 보고 시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각종 커리어 플랫폼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선 취업과 이직에 대해 현직자에게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선 ‘○○기업 다니는 형들 있어?’와 같이 관심 있는 기업 현직자를 찾는 글이 넘쳤다고 했다. 플랫폼 파트너의 질이 중요하겠다고 판단한 박 대표는 정식 서비스 제작에 앞서 지인 50명을 모두 명단에서 빼버렸다. 링크드인에서 일일이 100명의 사람을 다시 모았다. 구글과 애플의 미 본사 직원, 하버드 MBA에 진학한 직장인,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등이 모였다. 강석흔 본엔젤스파트너스 대표가 당시 시드(초기) 투자를 단행하며 법인 설립과 서비스 제작은 탄력을 받았다.
완성된 커피챗 서비스의 형태는 복잡하지 않았다. 파트너는 자신의 재직 회사명과 경력, 자기소개를 기재한 프로필을 앱에 올린다. 이직 준비, 커리어 노하우 조언, 면접 대비 등 자신 있는 설명 분야도 함께 올린다. 사용자는 이를 보고 파트너를 선택, 정해진 일정에 음성 대화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커피챗이라고 꼭 커피를 마시는 것도 아니다. 박 대표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장소와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대화를 이룰 방법을 고민했다”며 “20분의 대화는 짧다면 짧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파트너와는 반대로, 커피챗 사용자는 자신의 정보를 밝히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파트너 3400명, 10만 명 이상 사용자가 서비스를 거쳤다.
이직자가 궁금한 것은 결국 '연봉'
커피챗은 하나의 문화가 됐다. 올해 들어선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 등 기업들이 자체적인 커피챗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했다.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채용에 무게를 둔다는 것이었다. 박 대표의 플랫폼에서도 파트너들 중 각 기업의 리쿠르터(채용 담당자)들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최근 그가 새 실험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커피챗은 석 달 전 ‘연봉어택’이라는 신규 서비스를 내놓았다. 채용 담당자들과 구직자들의 커피챗을 주선하되, 그 중심에 연봉을 놓아보자는 구상이었다. 정식 입사 과정에선 연봉을 묻기 어렵지만, 커피챗에선 가능했다는 장점을 서비스 핵심으로 꾸린 것이다.
연봉어택은 채용 담당자가 플랫폼 내 구직자 이력을 확인하고, 현재 연봉에서 얼마나 지급 금액을 올려줄 수 있는지를 만남 전부터 제시한다. 마치 축구선수에게 이적료부터 제안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발자, 디자이너, 프로젝트매니저(PM) 등 스타트업 재직자들에게 익숙한 직무부터 시작했다. 공통적으로 양극화된 인재풀 속에서, 회사 측이 절실히 인력을 찾는 시장이란 특징이 있다. 제안하고 이를 수락하는 데 구속력은 없다. 이후 이어지는 커피챗에서 서로의 합을 맞춰볼 뿐이다. 당근, 토스증권, 리디, 한국신용데이터 등이 고객사가 됐다. 구직자들이 정확한 연봉부터 접할 수 있게 되자, 업계 추산 3~5%라는 채용 제안 메시지 응답률은 30%대까지 솟았다. 지금까지 서비스에 기록된 최고 연봉 이직자는 9년 차 백엔드(서버) 개발자로, 연봉은 직전 회사에서 30% 오른 3억 4800만원이었다.
채용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지만, 박 대표는 여전히 커피챗을 특정 형태로 고정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해외에는 정말 다양한 커피챗 사유가 있고,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는 하나의 문화일 뿐이다”며 “커피챗 과정을 어떻게 쓰는가는 당사자들끼리 정할 문제”라고 했다. 박 대표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이 결국 커피챗의 시작”이라며 “정보를 가진 사람에게 하나라도 질문하겠다는 적극성을 가지면, 미래를 바꿀 대화를 만날 수 있단 것을 국내 재직자들이 공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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