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등장한 황금색 코르셋에 바지를 매치한 아티스트, 성스러운 가스펠 코러스가 흐르는 가운데 꽉 찬 객석을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 따뜻하고 다정한 응원에 젖어 들려는 찰나 따뜻함은 곧 뜨거움으로 변했다. 요염한 손짓과 웨이브, 상의를 탈의하고 과감하게 배와 엉덩이를 흔드는 파격의 연속. 내한한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가 단 100분 만에 보여준 것들이다.
샘 스미스는 17, 18일 이틀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글로리아 더 투어 2023(GLORIA the tour 2023)'을 개최하고 약 2만여명의 관객과 만났다.
샘 스미스의 내한은 지난 2018년 10월 이후 5년 만이다. 당시 하늘색 슈트를 입고 감미롭게 노래하던 샘 스미스는 확 달라진 모습이었다. 불어난 체중, 강렬한 눈빛, 눈에 확 띄는 화려한 의상까지 어디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었다. 그는 2019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논 바이너리(non-binery, 남녀라는 이분법적 성별에서 벗어난 제3의 성)'라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놀라울 정도의 변화를 내보이는 중이다.
무조건적인 환영을 받는 시도는 아니었다. 누군가는 망사 스타킹 차림에 엉덩이를 노출하는 그를 '악마'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래하고 춤추는 샘 스미스의 모습은 '변화'보다는 '자유'에 가까웠다. 금기시되는 것들을 깨부수고 억압에 맞서는 몸짓은 이전보다 한층 홀가분해 보였다. 그 자유로움이 고스란히 관객에 전해졌다.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니 더욱 그랬다.
"오늘 밤 우리가 알아야 할 단 한 가지는 바로 자유입니다. 일어나서 춤추고 싶으면 춤추고,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면 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합시다."
무대는 오프닝을 비롯해 1부 '사랑(LOVE)', 2부 '아름다움(BEAUTY)', 3부 '성(SEX)'으로 나뉘었다. 샘 스미스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스테이 위드 미(STAY WITH ME)'를 오프닝곡으로 택해 "내 곁에 있어 줄래?"·"내게 필요한 건 당신뿐"이라며 부드럽게 노래한 샘 스미스는 2부에 이르러 의상을 쉼 없이 바꾸며 타인의 시선에 묶이지 않는 해방된 아름다움을 몸소 보여줬고, 3부에서는 '19금 이상 관람가'에 맞는 격한 퍼포먼스가 나왔다.
시작과 동시에 감탄이 터져 나온 건 샘 스미스의 압도적인 성량 때문이었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뚫고 탄탄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공연이 종료된 후 관객들은 "누가 음원을 틀어놓은 줄 알았다", "CD를 삼켰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따뜻함이 묻어나는 다정한 샘 스미스의 무대 매너도 매력적이었다. 그는 객석을 바라보며 "이 모든 걸 그냥 잠시 보겠다"며 감격에 찬 모습을 보였고, "한국에 5년이나 오지 못했다. 모두 그리웠다.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인크레더블(incredible, 너무 좋아서 믿을 수 없는)'이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나라, 믿을 수 없는 도시네요. 오늘 믿을 수 없는 밤을 만들어드릴게요."
모든 부조화는 샘 스미스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니 '자유'로 바뀌었다. '다이아몬드(Diamonds)' 무대에서는 무게감 있는 보컬로 공연장을 꽉 채우다가 돌연 스탠드 마이크를 쓸어내리며 매혹적인 몸짓을 선보여 호응을 끌어냈다. 의상 교체가 많았던 2부에서는 화려한 비즈 장식에 풍성한 실크가 더해진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가 이내 검은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카우보이모자까지 썼다.
그에게 생애 첫 빌보드 '핫 100' 1위의 영광을 안겨준 '언홀리(Unholy)'를 소화할 땐 티팬티, 망사 스타킹 차림에 뿔 달린 모자를 쓴 채 거친 기세로 창을 휘저었다. 일각에서 '사탄의 무대'라고 비판한 그 퍼포먼스다. 관객들은 모두 기립해 자리에서 뛰며 샘 스미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객석에는 악마 뿔 형상의 머리띠를 한 팬들도 보였다. 그를 향한 조용한 응원이다.
공연은 성스러운 분위기로 시작해 아빠 혹은 남편이 퇴폐업소에서 불경한 짓을 한다는 내용이 담긴 '언홀리'로 끝났다. 분위기가 반전된 순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경계와 구분이 허물어지는 공간이었다. 무대 위에서 두 팔을 벌린 채 빙그르르 한 바퀴 돌고, 리듬에 맞춰 손가락을 튕기거나 웨이브 하는 샘 스미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은 곧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새로운 말을 건네게 된다. "당신의 다음이 궁금해지네요."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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