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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분쟁으로 인해 국가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양측의 전쟁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미국의 관심이 분산되면서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섰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합리화할 명분을 찾은 러시아도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 편에 서 중동 국가들과 척을 지게 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를 대체할 원유 수입선을 놓칠 위기에 놓였다. 전쟁이 길어지면 우크라이나가 최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양측의 무력 충돌이 장기화하거나 확전되면 글로벌 역학 구도가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러 정상, 미국 견제하며 공조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세계가 이스라엘 지원을 늘리자 중국과 러시아는 공조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8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에 참석해 3시간가량 마라톤회담을 했다. 이 회담에서 서로를 "오랜 친구"와 "친애하는 친구"로 부르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두 사람은 기존 입장대로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주권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공감대를 재확인했다.
앞서 지난 13일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포위를 나치 독일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에 빗대어 비판했다. 이스라엘을 독일 나치 정권과 동일시한 셈이다.
이와함께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공격을 비난히면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가볍게 보고 있다"며 서방 국가들의 위선을 폭로했다.
가브리엘리우스 란스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켜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며 "러시아 입장을 강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자국 이해관계에 맞게 활용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신장지역의 위구르족을 탄압하면서 이를 테러리즘과의 싸움으로 정당화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7일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묘사할 때 테러리즘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하마스를 비난하기보다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했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장관은 하마스 침공 후 첫 공식 발언에서 "문제의 핵심은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이스라엘 정부를 겨냥했다.
WSJ는 "중국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늘 미국과의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관심이 중동문제에 집중되자 중국이 혜택을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팔 전쟁이 글로벌 균형에 영향"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이·팔 전쟁으로 인한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이다. 회원국 또는 동맹국 간 결속력을 다질 기회를 얻기는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입는 손해가 더 크다.
유럽 국가들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제한했다. 대신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 국가에서 부족한 에너지를 충당해왔지만 이번 전쟁으로 인해 중동 국가들과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러시아를 대체할 대안을 잃었다.
이스라엘과 거리를 좁혀온 인도도 타격을 입었다. 인도는 지난 9월 미국과 손을 잡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 등을 연결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을 추진하는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가 멀어지면서 이 구성의 미래도 불확실해졌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르면 최대 피해자는 우크라이나가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방세계의 지원이 이스라엘로 몰리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가 급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WSJ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미국 및 유럽의 세를 확장시키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보다 서방세계의 러시아에 대한 압력을 완화하고, 중국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글로벌 세력 구도 재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정치 지형이 양분됐고 변화한 지형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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