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정(23)의 별명은 ‘사막여우’다. 외모가 닮았다며 팬들이 붙여줬다. 하지만 성격은 ‘곰’에 가깝다. 아파도 티를 내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임희정은 “부상이 부진의 핑계처럼 들리는 게 싫었다”고 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임희정은 데뷔 해인 2019년 오른쪽 발목 인대가 찢어진 채로 시즌을 뛰었고 지난해 초 폐차할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을 한참이 지난 뒤에야 공개했다.
그때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이 올해까지 이어졌지만 임희정은 아무렇지 않은 척 대회를 뛰었다. 그러나 등과 손목 통증이 계속됐고 시즌 중반까지 커트 탈락과 기권을 반복했다. 지난 7월엔 한 달을 통째로 쉬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임희정은 “내가 인생에서 내린 결정 중 가장 큰 결단이었다”고 했다.
복귀 후 서서히 경기력을 끌어올린 임희정이 19일 완벽하게 부활한 모습을 보여줬다. 임희정은 이날 경기 양주시 레이크우드CC(파72·6606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상상인·한국경제TV 오픈 2023’ 1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7개를 쓸어 담으며 7언더파 65타를 쳤다. 네 명이 몰려 대혼전이 빚어진 공동 2위 그룹을 1타 차로 따돌리고 단독 선두로 첫 번째 라운드를 마쳤다.
올 시즌 첫 승이자 지난해 6월 한국여자오픈 이후 1년4개월 만에 우승 기회를 맞은 임희정은 이제야 부진의 원인을 털어놨다. 임희정은 “몸이 붓고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며 “선수 생활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실력이 아닌 것 같은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정말 어려웠다”고 했다.
임희정은 이날 흠잡을 데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페어웨이 안착률은 92.8%(13/14)에 달했다. 주무기인 아이언도 살아났다. 이날 그린 적중률은 83.3%였다. 이 대회 전까지 그의 시즌 평균 그린 적중률은 68.3%로 전체 64위에 불과했다. 임희정은 “(교통사고 전) 감으로 돌아온 것 같다”며 “러프가 긴 곳이 꽤 있었기 때문에 페어웨이를 지키는 데 신경을 썼고 이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임희정 뒤를 황유민(20)과 시즌 첫 승에 도전하는 박결(27) 김수지(27) 최가빈(20) 등 네 명이 1타 차로 쫓았다. 공동 6위 그룹도 치열하다. 황유민과 신인상 싸움을 벌이는 김민별(19)을 비롯해 시즌 첫 승에 도전하는 지한솔(27) 정슬기(28) 등이 5언더파 67타로 줄을 섰다.
대상, 상금왕 등 주요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는 ‘신(新)대세’ 이예원(20)과 박지영(27)의 맞대결은 이예원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이예원은 이날 버디 5개와 보기 1개를 묶어 4언더파 68타 공동 9위에 올라 2언더파 70타 공동 26위로 라운드를 마친 박지영에 앞섰다. 이예원은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약 6m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톱10’에 들 수 있었다.
박지영은 비록 이예원에게 밀렸지만 막판 뒷심을 보여주며 이름값을 했다. 박지영은 이날 첫 5개 홀에서 보기 4개를 쏟아내며 최하위권으로 뒤처졌지만 남은 홀에서 버디 6개를 추가하는 집중력을 발휘해 순위를 50계단 넘게 끌어올렸다.
양주=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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