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어 디스플레이·2차전지…화학물질 킬러규제 풀겠다"

입력 2023-10-22 18:27   수정 2023-10-23 01:50


지난 11일 국회의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한화진 장관이 야당 의원들과 공방을 벌이는 장면이 연출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4대강 보(洑) 등을 두고 야당이 공격적인 질문을 하자 한 장관이 “오염수를 희석해 방류하는 건 국제적인 처리 방식” “지난 정부의 보 처리 절차는 위법·부당” 등 거침없는 답변을 내놓으며 설전을 벌인 것이다. 사실관계 설명을 위해 답변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평소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학자 출신으로 차분한 스타일로 알려진 터라 더 그랬다. 국감 하루 뒤인 12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반포동 한강홍수통제소 3층 집무실에서 한 장관을 만났다.

▷‘한화진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정책에 대해선 좀 확실하게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국민 입장에서도 (장관이)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고요.”

▷화학물질 관련 킬러규제를 없애겠다고 했는데요.

“기업들이 투자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게 화학물질 규제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반도체산업만 해도 화학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정마다 화학물질이 다 들어가거든요. 화학물질 등록이 늦어지면 투자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는 거죠. 가습기 살균제 문제 때문에 박근혜 정부 때 유럽연합(EU)의 화학물질 규제를 (참고해) 도입했는데 그대로 들여온 게 아니라 더 강하게 적용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거죠.”

▷EU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것으로 압니다.

“신규 화학물질을 들여올 때 등록해야 하는 기준이 우리는 0.1t인데 EU는 1t입니다. 많은 나라가 1t이고요. 그래서 우리가 1t으로 규제를 완화하려는 것이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겁니다. 국민 건강과 관련 있는 문제니 0.1~1t 부분을 어떻게 할지까지 담아서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고요. 올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법 개정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없나요.

“시행령이나 고시를 고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있어요. 예컨대 고시로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반도체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에 대한 특화고시가 있습니다. 반도체 공장엔 화학물질이 워낙 많이 들어가니까 화학물질을 하나하나 다루는 게 아니라 ‘통’으로 다루거든요. 작년에 반도체 규제를 풀었는데 반도체업계에선 경제적 효과가 연 2조원 이상이라고 추산합니다. 이후 디스플레이업계가 ‘반도체와 거의 비슷한 공정이니 우리도 해달라’고 요청해서 지금 검토하고 있습니다. 2차전지와 바이오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겁니다.”

▷환경영향평가가 세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환경영향평가가 40년 전 도입됐는데, 그렇다 보니 과거에 매여 있는 부분이 있어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환경 오염을 줄이는) 저감 기술도 많이 발달했는데 그런 것에 대한 반영이 좀 더딘 거죠. 환경영향평가가 연간 3100건이나 되는데 환경 영향이 작은 사업이나, 큰 사업이나, 중간 규모 사업이나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기준을 정하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들고 부실 평가가 되는 부분도 있거든요. 그래서 환경에 영향이 큰 사업은 집중적으로 평가하고 영향이 작은 사업은 평가를 간소화하는 식으로 제도를 바꾸려고 합니다.”

▷올여름 100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극한 호우가 내렸습니다. 치수 대책은 어떤 게 있습니까.

“(지난 정부에서 중단된) 댐 건설을 10개 정도 할 계획입니다. 내년 상반기쯤 기본적인 로드맵이 나올 것 같습니다. 보통 댐 건설엔 준공까지 10년 정도 걸려요. 어디에 댐을 지을지 모두 정해진 건 아니고 (어디가 적당한지) 타당성 조사를 해야 합니다. 하천 정비도 할 계획입니다. 하천 정비의 핵심은 준설과 제방 보강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본류는 대대적으로 정비해서 홍수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지류, 지천은 환경단체가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반대하는 바람에 제대로 준설을 하지 못했어요. 지난 정부가 준설 자체를 터부시하기도 했고요.”

▷현 정부의 4대강 보 유지 결정에 환경단체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보 주변 농민들이 물을 쓸 수 있고 취수장이나 양수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거든요. 보를 해체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있어요. 시설이 너무 노후됐다거나 안전에 문제가 있다거나 해야죠. 지난 정부 땐 녹조를 대표적인 이유로 내세웠어요. 지난 정부의 보 해체는 비과학적이고 성급했습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컵 보증금제는 세종과 제주에서 시범 시행 중이다. 현행법이 유지되면 2025년 전국으로 확대된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사실 탁상행정에서 출발했다고 보여집니다. 현장 상황은 복잡한데 그런 걸 모르고 매장에서만 ‘뭘 하면 되겠지’ 하는 식으로 법을 제정한 것이죠. 그런데 매장에서도 컵이 쌓일 때마다 바로바로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 양이 돼야 (처리업체가) 가져가니까 그사이 냄새 문제, 위생 문제가 있어요. 소비자가 컵을 반납해야 하는데 컵은 두고 (컵에 붙은) 바코드만 반납하는 경우도 있고요. 게다가 편의점은 일회용 컵 사용이 많은데 컵 보증금제 대상이 아닙니다. 어디는 하고 어디는 안 하고 하니까 매장에서는 매출에 영향을 받는다는 불만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국회에 지방자치단체 여건에 맞게 자율적으로 제도를 시행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영국과 스웨덴에서 넷제로(탄소중립) 속도를 늦추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우리도 그런 계획이 있습니까.

“우리는 2030년까지 2018년 탄소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넷제로를 하겠다는 목표인데요. 아직은 방향을 틀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산업부문 발전부문 교통부문 등) 부문별로 감축 목표치를 조정할 것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보는 겁니다.”

▷윤석열 정부의 탄소 배출 감축 계획을 보면, 2027년 임기가 끝난 이후에 감축을 많이 하는 걸로 잡아놨습니다. ‘책임 떠넘기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책임 떠넘기기는 전혀 아닙니다. 기술이란 게 실증을 거쳐 상용화하고 효과가 나오려면 몇 년이 걸립니다. 연구개발(R&D) 투자나 기술이 상용화돼서 현장에서 적용되는 시기를 고려해야 합니다.”

▷정부가 올 4분기에 전기자동차 보조금을 대당 최대 780만원까지 늘리기로 했는데 내년엔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배터리 밀도나 자원 순환성을 고려해 전기차 보조금을 주는 걸 고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산 배터리(리튬·인산철)는 자원 순환성이 낮아요. 재활용이 잘 안 됩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3원계(니켈·코발트·망간)배터리는 재활용이 잘됩니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우리 배터리가 부가가치가 높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거죠. 전기차 보조금체계 개편을 통해 합리적 가격의 고성능 전기차에 더 많은 인센티브가 지급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장관으로 일한 지 1년 반가량 지났는데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규제는 환경 목표는 달성하지도 못하고 경제적 비용만 치르게 한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말이나 구호, 숫자로 보여주는 환경정책이 아니라 국민이 공감할 수 있고 창의적 혁신을 유도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끄는 환경정책을 수립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화진 장관은…
한화진 장관은 학자 출신이다. 대기오염과 기후 변화를 연구했다. 국책연구소인 한국환경연구원 창립 멤버로 이 연구원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기후변화전문위원으로 일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환경비서관으로 발탁돼 행정 경험을 쌓았다. 저탄소 녹색성장 국가비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립에 관여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 녹색성장위원을 지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환경부를 이끌고 있다. 환경부 산하 환경연구원 출신이지만 부처 장악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한화진 장관 프로필

△1959년 대전 출생
△고려대 화학과 졸업, 물리화학과 석사
△미국 UCLA 화학과 박사
△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청와대 환경비서관(이명박 정부)
△환경연구원 부원장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환경연구원 명예연구위원
△한림대 기후변화융합전공 객원교수


정리=곽용희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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