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국회의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한화진 장관이 야당 의원들과 공방을 벌이는 장면이 연출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4대강 보(洑) 등을 두고 야당이 공격적인 질문을 하자 한 장관이 “오염수를 희석해 방류하는 건 국제적인 처리 방식” “지난 정부의 보 처리 절차는 위법·부당” 등 거침없는 답변을 내놓으며 설전을 벌인 것이다. 사실관계 설명을 위해 답변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평소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학자 출신으로 차분한 스타일로 알려진 터라 더 그랬다. 국감 하루 뒤인 12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반포동 한강홍수통제소 3층 집무실에서 한 장관을 만났다.
▷‘한화진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정책에 대해선 좀 확실하게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국민 입장에서도 (장관이)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고요.”
▷화학물질 관련 킬러규제를 없애겠다고 했는데요.
“기업들이 투자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게 화학물질 규제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반도체산업만 해도 화학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정마다 화학물질이 다 들어가거든요. 화학물질 등록이 늦어지면 투자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는 거죠. 가습기 살균제 문제 때문에 박근혜 정부 때 유럽연합(EU)의 화학물질 규제를 (참고해) 도입했는데 그대로 들여온 게 아니라 더 강하게 적용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거죠.”
▷EU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것으로 압니다.
“신규 화학물질을 들여올 때 등록해야 하는 기준이 우리는 0.1t인데 EU는 1t입니다. 많은 나라가 1t이고요. 그래서 우리가 1t으로 규제를 완화하려는 것이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겁니다. 국민 건강과 관련 있는 문제니 0.1~1t 부분을 어떻게 할지까지 담아서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고요. 올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법 개정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없나요.
“시행령이나 고시를 고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있어요. 예컨대 고시로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반도체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에 대한 특화고시가 있습니다. 반도체 공장엔 화학물질이 워낙 많이 들어가니까 화학물질을 하나하나 다루는 게 아니라 ‘통’으로 다루거든요. 작년에 반도체 규제를 풀었는데 반도체업계에선 경제적 효과가 연 2조원 이상이라고 추산합니다. 이후 디스플레이업계가 ‘반도체와 거의 비슷한 공정이니 우리도 해달라’고 요청해서 지금 검토하고 있습니다. 2차전지와 바이오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겁니다.”
▷환경영향평가가 세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환경영향평가가 40년 전 도입됐는데, 그렇다 보니 과거에 매여 있는 부분이 있어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환경 오염을 줄이는) 저감 기술도 많이 발달했는데 그런 것에 대한 반영이 좀 더딘 거죠. 환경영향평가가 연간 3100건이나 되는데 환경 영향이 작은 사업이나, 큰 사업이나, 중간 규모 사업이나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기준을 정하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들고 부실 평가가 되는 부분도 있거든요. 그래서 환경에 영향이 큰 사업은 집중적으로 평가하고 영향이 작은 사업은 평가를 간소화하는 식으로 제도를 바꾸려고 합니다.”
▷올여름 100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극한 호우가 내렸습니다. 치수 대책은 어떤 게 있습니까.
“(지난 정부에서 중단된) 댐 건설을 10개 정도 할 계획입니다. 내년 상반기쯤 기본적인 로드맵이 나올 것 같습니다. 보통 댐 건설엔 준공까지 10년 정도 걸려요. 어디에 댐을 지을지 모두 정해진 건 아니고 (어디가 적당한지) 타당성 조사를 해야 합니다. 하천 정비도 할 계획입니다. 하천 정비의 핵심은 준설과 제방 보강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본류는 대대적으로 정비해서 홍수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지류, 지천은 환경단체가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반대하는 바람에 제대로 준설을 하지 못했어요. 지난 정부가 준설 자체를 터부시하기도 했고요.”
▷현 정부의 4대강 보 유지 결정에 환경단체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보 주변 농민들이 물을 쓸 수 있고 취수장이나 양수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거든요. 보를 해체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있어요. 시설이 너무 노후됐다거나 안전에 문제가 있다거나 해야죠. 지난 정부 땐 녹조를 대표적인 이유로 내세웠어요. 지난 정부의 보 해체는 비과학적이고 성급했습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컵 보증금제는 세종과 제주에서 시범 시행 중이다. 현행법이 유지되면 2025년 전국으로 확대된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사실 탁상행정에서 출발했다고 보여집니다. 현장 상황은 복잡한데 그런 걸 모르고 매장에서만 ‘뭘 하면 되겠지’ 하는 식으로 법을 제정한 것이죠. 그런데 매장에서도 컵이 쌓일 때마다 바로바로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 양이 돼야 (처리업체가) 가져가니까 그사이 냄새 문제, 위생 문제가 있어요. 소비자가 컵을 반납해야 하는데 컵은 두고 (컵에 붙은) 바코드만 반납하는 경우도 있고요. 게다가 편의점은 일회용 컵 사용이 많은데 컵 보증금제 대상이 아닙니다. 어디는 하고 어디는 안 하고 하니까 매장에서는 매출에 영향을 받는다는 불만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국회에 지방자치단체 여건에 맞게 자율적으로 제도를 시행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영국과 스웨덴에서 넷제로(탄소중립) 속도를 늦추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우리도 그런 계획이 있습니까.
“우리는 2030년까지 2018년 탄소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넷제로를 하겠다는 목표인데요. 아직은 방향을 틀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산업부문 발전부문 교통부문 등) 부문별로 감축 목표치를 조정할 것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보는 겁니다.”
▷윤석열 정부의 탄소 배출 감축 계획을 보면, 2027년 임기가 끝난 이후에 감축을 많이 하는 걸로 잡아놨습니다. ‘책임 떠넘기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책임 떠넘기기는 전혀 아닙니다. 기술이란 게 실증을 거쳐 상용화하고 효과가 나오려면 몇 년이 걸립니다. 연구개발(R&D) 투자나 기술이 상용화돼서 현장에서 적용되는 시기를 고려해야 합니다.”
▷정부가 올 4분기에 전기자동차 보조금을 대당 최대 780만원까지 늘리기로 했는데 내년엔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배터리 밀도나 자원 순환성을 고려해 전기차 보조금을 주는 걸 고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산 배터리(리튬·인산철)는 자원 순환성이 낮아요. 재활용이 잘 안 됩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3원계(니켈·코발트·망간)배터리는 재활용이 잘됩니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우리 배터리가 부가가치가 높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거죠. 전기차 보조금체계 개편을 통해 합리적 가격의 고성능 전기차에 더 많은 인센티브가 지급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장관으로 일한 지 1년 반가량 지났는데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규제는 환경 목표는 달성하지도 못하고 경제적 비용만 치르게 한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말이나 구호, 숫자로 보여주는 환경정책이 아니라 국민이 공감할 수 있고 창의적 혁신을 유도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끄는 환경정책을 수립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 한화진 장관 프로필
△1959년 대전 출생
△고려대 화학과 졸업, 물리화학과 석사
△미국 UCLA 화학과 박사
△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청와대 환경비서관(이명박 정부)
△환경연구원 부원장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환경연구원 명예연구위원
△한림대 기후변화융합전공 객원교수
정리=곽용희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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