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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주가 급락중인 배터리 업계 날벼락
한국도 흑연 매장량 풍부
중국 손아귀 벗어날 수 있을까
중국이 2차전지 핵심 원료 흑연을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하자 맞대응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흑연 수입을 중국에 90% 이상 의존하는 국내 기업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런데 연필심에도 들어가는 흔한 원료인 흑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타격을 받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이 전격적으로 수출 통제를 할 경우 단기간 공급망 혼란을 초래해 가격이 잠깐 급등하거나 품귀 현상을 빚는 데 그칠 것인지, 아니면 한국 배터리·양극재 기업들이 중장기적으로 중국에 끌려다녀야 하는 상황인지 알아본다.
中 "흑연 수출하려면 허가 받아라"
중국 상무부와 관세청은 20일 공고를 통해 “국가 안보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흑연 일부 품목에 대해 오는 12월부터 수출을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수출 통제에 대상 품목은 고순도(99.9% 초과), 고강도(30Mpa 초과), 고밀도(1.73g/㎤ 초과) 천연인상 흑연 및 인조흑연 제품(구상흑연·팽창흑연 등)이다. 통제 대상에 리스트에 포함된 제품은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수출할 수 없다. 흑연 공급을 중국이 좌지우지하고 있어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중국이 흑연 생산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고, 가공 공정은 약 70%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한국이 수입하는 흑연은 대부분 2차전지 음극재를 제조하는 데 쓰여 배터리 등 전기차 업계가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 올 들어 지난달까지 7909만달러 규모의 인조흑연을 수입했고, 중국산이 94.3%에 달한다. 흑연은 배터리 4대 핵심 자재 중 하나인 음극재의 핵심 재료로 배터리 원가의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퓨처엠 등이 생산한 음극재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에 납품돼 배터리로 만들어져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완성차회사에 공급된다.
다만 중국이 실제로 통제에 나서더라도 가격이 급상승할지 여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천연흑연 가격은 지난주 t당 3950위안(약 539.62달러)으로 연초 대비 25%나 하락하는 등 약세다. 경기 부진으로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필심과 뭐가 다른가...중국은 어째서 압도적 1위가 됐나
유럽에서 연필심의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흑연은, 이후 윤활제와 로켓의 엔진 내벽, 화학 공정의 내열성 장비의 재료 등으로 다양하게 쓰여왔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전까지는 순도 높은 흑연이 핵 원자로의 감속재로 쓰이기도 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배터리 음극재의 재료로 주목받아왔다. 흑연은 매장량이 많고 싼 광물이지만 자동차 배터리에 쓰려면 가공비가 많이 들고 쓰는 양도 적지 않아 배터리 값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높다. 전기차 값의 최대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원가의 10% 가량이다. 거칠게 계산해보면 5000만원짜리 전기차의 배터리 값이 2000만원이라고 하면 200만원어치가 들어간다는 얘기다. 흑연 분말과 점토를 섞어 구워 만드는 연필심과 달리, 자동차 배터리 음극재에는 고순도 흑연이 사용된다. 천연 흑연을 이차전지 음극재 제조에 직접 쓰기도 하지만, 입자를 구형으로 재가공한 구상흑연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가공 과정에 대량의 불산(HF)이 사용된다. 불산은 염산·황산과 비교해도 위험성이 매우 높은 유독 물질이다. 2012년 구미 반도체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났을 때는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다쳤을 뿐만 아니라, 주변지역 3㎞ 이내 주민들이 모두 대피해야할 정도였다. 불산을 사용하지 않는 대체 흑연 가공 공정도 개발됐으나, 비용이 높아지는 등의 난점으로 본격 실용화가 늦어지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인건비가 저렴하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미흡한 중국에서 흑연 생산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국 내 흑연 매장량이 세계 1위를 다툴 정도로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다른 국가에서도 중국 기업(국가)들이 채굴권을 확보해 흑연을 생산중이다.
한반도에 흑연 널렸지만...아프리카 가는 車업계
한국에도 흑연 매장량이 상당하다. 남북한 합쳐 430만t이 매장돼 있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도 흑연을 생산했다. 그러나 지금은 임금과 제반 비용 등이 크게 오른 탓에 국내에선 경제적 이유로 채굴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채굴 과정에서 환경 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따라서 중국이 공급을 끊을 경우 당장 대체 공급처를 찾긴 어렵고 가격도 비싸지는 탓에 배터리 업계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재 시장 조사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용 흑연 수요가 급증하면서 2035년이면 지난해 전 세계 흑연 사용량의 6.5배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국내 배터리 관련 기업들은 차근차근 탈중국을 노리고 있다. 아프리카로 달려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 5월 호주 광업회사 블랙록마이닝이 보유한 탄자니아 광산에서 1000만달러(약 130억원) 규모의 이차전지 배터리용 천연흑연을 장기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천연 흑연을 인조흑연으로 가공하는 공장도 마련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1월 경북 포항에 연간 생산량 1만t 규모의 인조흑연 음극재 2단계 공장을 착공했다. 2021년 12월엔 연 생산량 8000t 규모의 1단계 공장은 이미 2021년 12월에 준공해 운영중이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로 탈중국에 한창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모잠비크에서 광산을 운영하는 호주 시라 리소스와(Syrah Resources) 지난해 10월 흑연 공급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테슬라 역시 시라리소스와 올해 배터리용 흑연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세데스 벤츠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유럽 협력사들도 호주 광물업체 탈가(Talga)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공급선 다각화를 추진중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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