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활발해진 일하는 방식 유연화가 최근 다시금 제한되는 분위기다. 2023년 머서가 3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다섯 기업 중 두 곳에서 오피스 근무일수를 늘렸거나 늘릴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향후 오피스 근무를 줄여가겠다고 밝힌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국내 기업도 사정은 비슷해 보인다. 우아한 형제들은 구성원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는 '근무지 자율 선택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주목을 끌었다. 사무실, 재택, 해외근무지 중 구성원이 근무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전반적인 ‘백투오피스(Back to Office)’ 기조 속에서, 우아한 형제들 역시 근무지 자율 선택제를 1년 만에 폐지하고 주 1~2회 사무실로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워크제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피스 근무를 늘리려는 기업들의 입장 변화에 직원들은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다. 딜로이트의 2023년 MZ세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가 주5일 출근을 강제할 경우 밀레니얼 세대 75%가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응답했다. Z세대는 이 수치가 77%에 이른다. 많은 기업들이 사무실 출근과 원격 근무를 혼용하는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의 절충안을 택했으나 유연근무에 대한 기업과 직원간의 견해 차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코로나 종식 이후 주 3일 오피스 근무제로 전환한 애플, 대면 협업을 위해 주 4일 출근제를 실시하는 디즈니 역시 직원들의 거센 반발을 맞닥뜨려야 했다.
근무 방식 유연화는 근로자에게 대체 불가능한 자율성을 제공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에 전면적인 유연근무제(Flexible Working)가 '팬데믹 상황 속 일시적인 실험에 불과하다'거나, '특정 IT기업에서만 정착 가능하다'는 시각은 일하는 방식 혁신을 위해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구성원이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며 회사를 다니길 바란다면, 개인의 삶에 맞춰 일하는 장소와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근로자에게 제공하고 싶다면, 유연근무제만한 카드는 드물다. 이는 일과 삶이 양립가능한 긍정적인 직원 경험을 돕기 때문이다.
유연근무제는 근무시간과 장소의 제한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모든 근무방식을 통칭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근무시간 측면에서는 일, 주, 월 또는 몇 개월을 기준으로 구성원이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한다. 하루를 기준으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차출퇴근제, 주 단위로 사무실 출근날을 고르는 출근요일선택제 등이 대표적인 근무시간 유연화 사례다. 근무장소 유연화 역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다소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개인자율좌석, 집중근무룸, 소통을 위한 오픈 좌석 등 다양한 테마의 사무공간 선택권을 제공한다. 보다 적극적인 기업은 본사 건물을 벗어나 교통 요충지에 거점 오피스를 두거나,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는 등의 제3의 근무장소를 활용하기도 한다. 오피스에 출근할 필요 없는 재택 또는 원격근무도 근무장소 유연화 방식 중 하나다.
유연근무제 이슈는 ‘최적의 업무환경’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산업과 기술 발전으로 근로자의 업무 인프라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해졌다. 반면 일하는 공간과 시간은 주목할만한 변화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팬데믹과 함께 등장한 유연근무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구성원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 자체에 보다 집중하는 방법을 고안해내야 했다. 이를 고려하면, 최근 일어나는 재택근무 폐지나 유연근무 축소 추세는 과거 ‘나인투식스’ (9 to 6)의 경직된 오피스 근무로 회귀하는 차원보다는 업무환경 변화에 따른 최적의 일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보는 시각이 합당할 것이다.
기업은 다양한 근무시간과 장소를 조합하며 조직 상황에 적합한 근무방식을 모색할 수 있다. 사실 어떠한 형태의 유연근무를 제공할지 결정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회사의 일하는 문화, 구성원의 성숙도, 보안의 중요성, 물리적 공간 등 유무형 인프라에 따라 대부분 좌우되기 때문이다. 유연근무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보다 유의할 점은 유연근무를 통해 추구하는 일하는 방식이 잘 작동하기 위한 제반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우선, 조직의 업무관리체계를 점검해보자. 구성원들에게 유연한 근무방식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면 무엇보다 업무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유연근무에 있어 기본 전제는 업무성과에 대한 구성원의 책임감이다. 이에 어떠한 근무형태에서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구성원 개개인의 업무 책임과 성과를 명확히 정의하고 이를 핵심 관계자 모두에게 투명하게 오픈하는 업무 환경이 필수적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이러한 투명한 업무 환경을 선도적으로 도입하고 있던 기업으로 Gitlab이 있다. 모든 직원들은 상세한 ‘업무수행 설명서(README)’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문서는 그들의 직무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업무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포함된다. 수행하는 업무와 회의는 모두 기록된다. 다소 급진적이기는 하지만, 부서별 성과지표와 개인 성과지표 달성 현황도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투명성은 명확한 책임구조를 만들고, 업무를 언제 어디서든 인수인계하여 일하는 환경을 구축한다. 모든 것이 기록되기 때문에 무의미한 회의에 참여할 필요는 없고, 사무실에 없는 구성원의 목표를 그때그때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대면근무가 주는 유대감과 소속감을 어떻게 유지할지 고민해야 한다. 기존에는 같은 사무실 공간에서 직원 간 사회적 접촉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는 조직의 결속력을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유연근무제를 겪으면서 구성원 간의 네트워킹과 상호작용이 이전만 못해진 것이 사실이다. 구성원끼리의 사회적 관계가 조직 성과와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직 내 친밀감과 소속감을 도모하는 팀 단위의 이벤트도 필요하다. 구글은 '해피 아워(Happy Hour)' 제도를 활용한다. 팀 단위로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별도로 두어 직원 간의 긍정적인 관계형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공유하는 사소한 대화, 또는 점심을 먹으면서 공유하는 취미생활 정도의 가벼운 소통을 대체하는 교류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연근무제에 대한 리더의 참여와 공감대 형성에 신경써야 한다. 현장에서 구성원들이 유연근무 참여에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직 내 존재하는 암묵적 규율 때문이다. “우리 팀은 출근을 하는 분위기라서...”, “9시엔 모두가 나와있는 것 같아서...” 등과 같이 구성원들은 기존 통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걸림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주도적 역할이 요구된다. 유연근무 필요성에 대해 모든 리더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모범을 보이도록 책임을 부여하는 한편, 최고 경영진의 스폰서십을 공식적으로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리더들로부터 공감을 형성하기 위해, 논의의 쟁점을 ‘유연근무’가 아닌, ‘최적의 업무 방식’으로 바꾸어 보자. 사무실의 인위적인 장소에서 벗어나, 회사라는 곳이 어떠한 장소인지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리더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보는 것이다.
유연근무 트렌드는 단순히 일하는 장소와 시간의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 유연근무를 일의 미래에 발맞춰 일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으로 바라볼 때, 조직과 구성원 모두가 윈윈하는 일하는 방식 혁신에 한 걸음 더 다가설 것이다.
오현주 MERCER Korea 선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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