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이태원동의 한 케밥집. 1년 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점에서 도보로 1분 거리인 이곳은 지난 7월 용산구로부터 불법 건축물 시정 명령을 받았다. 이태원 사고가 난 지 불과 4개월 뒤인 올초 길이 6m, 폭 0.6m의 불법 철골 구조물(3.78㎡)을 설치해 케밥을 팔다가 적발된 것. 건물 뒤편에도 길이와 폭이 각각 2m 튀어나온 불법 구조물을 만들어 영업하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이 23일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반경 300m 이내 건축물 1000여 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올해 신규로 적발된 불법 건축물은 아홉 곳인 것으로 조사됐다. 참사 전에 적발됐지만 시정하지 않은 곳도 76곳에 달했다. 용산구 전체로 보면 더 많다. 용산구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이후 지난해 11월부터 올 9월까지 적발한 불법 증축물이 총 279건이다. 이 중 199건에 대해 이행강제금 2억6450만원을 부과했다.
사고 이전에 적발돼 시정되지 않은 불법 증축물까지 합하면 총 1883건(20억3339만원)에 달한다. 용산구 관계자는 “참사 이후에도 불법 증축한 건물주와 상인이 적지 않다”며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찾은 이태원 세계문화음식의 거리에서도 21곳의 위반 건축물이 발견됐다. 철제 구조물을 통한 테라스 확장 등이 대부분이었다. 참사 발생 지역에서 145m 떨어진 이태원동 S술집은 지난 7월 불법 건축물로 용산구에 적발된 가게로 길이 10m·폭 1m(면적 10.8㎡)의 증축물을 불법으로 설치했다. 건너편 술집도 4월 적발됐다. 1층부터 3층까지 테라스와 화장실 등을 증축해 무려 194㎡(약 58평)를 무단으로 늘렸다.
용산구가 단속을 놓친 건축물도 적지 않다. 사고 발생 지역으로부터 120m 거리의 해장국집은 2021년 철골을 이용해 벽을 세우고 비닐로 외부를 둘러싸 공간을 확보했다. 이곳은 손님 대기 장소와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상인들이 불법 증축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불법 증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에 비하면 수백만원의 벌금은 ‘푼돈’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 상인은 “증축으로 인한 수익이 더 크기 때문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굳이 원상복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사실 우리 가게 앞에서 안전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참사 직후 불법 건축물에 대한 이행강제금 상향 등이 추진됐지만 아직 바뀐 게 없다. 이행강제금은 불법 증축물에 연 2회 이내 ‘1㎡당 시가표준액×위반 면적×0.5’의 벌금이 매겨진다. 올해 초 서울시는 이행강제금 규모를 두 배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최근 시의회에서 서민 고통을 가중할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 제동이 걸렸다.
용산구 관계자는 “직원 5명이 단속해 확인이 안된 불법 증축물이 있을 수 있다”며 “불법 건물을 강제 철거할 순 있지만 증축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있을 때만 가능해 현실적으로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장강호/안정훈 기자 callm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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