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 부유층 사이에선 국제 불법 송금조직을 활용한 현금 해외 빼돌리기가 성행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인 사업가는 최근 싱가포르로 500만위안(약 9억2000만원)을 보냈다고 했다. 중국에선 연간 5만달러 한도 내에서 해외 송금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 사업가는 불법 송금조직을 통해 ‘환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은행을 통해 송금할 때보다 환전 수수료가 20~30% 비싸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거액을 해외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해외 송금을 원하는 중국 부유층은 대부분 불법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는 게 이 사업가의 설명이었다.
거대한 불법 송금 네트워크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비공식 송금 시스템은 ‘하왈라’로 불린다. 하왈라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신용거래 시스템이다. 지금은 은행을 통하지 않는 국제적 송금 시스템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해외로 몰래 자금을 옮기는 지하경제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2021년 중국 서부 간쑤성에서 이뤄진 조사에서 약 14조원 규모의 자금을 관리하는 불법 송금조직이 적발되기도 했다.
중국 내 초부유층과 권력가들은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고 싶을 때 외국 기업 인수합병(M&A)을 이용하기도 한다. A 중국 기업이 실제 가격보다 비싼 값에 미국에 있는 B기업을 사들이도록 한 뒤 차액을 현지에서 되돌려받는 게 대표적 수단이다. 100억원짜리 해외 기업을 200억원에 산 뒤 100억원을 되돌려받는 식이다. 자금 이전을 원하는 부유층은 중국 본토에서 A기업에 100억원어치 위안화를 지급하면 ‘자금 세탁’이 완료된다.
중국 정부는 불법 해외 송금과 자산 이전을 엄중히 다루고 있다. 적발되면 통상 송금 시도 금액의 30%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금액이 많으면 1~5년의 형량을 받거나 뇌물죄 등 중죄가 있을 경우엔 무기징역 처분이 내려지기도 한다. 해외로 돈을 이전하는 중국 부유층은 이 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미래가 불안한 中 부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부자들이 자산을 해외로 옮기는 것은 자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부동산 시장의 유동성 위기도 해결 기미가 안 보인다. 미·중, 양안 갈등 등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도 큰 불안 요소다.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 같이 잘살자’는 취지에서 ‘공동부유’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중국 자산가들 사이에서 ‘언제든지 돈을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심이 확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경제는 지속되기 어렵다. 중국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것도 투자심리와 소비를 얼어붙게 한 정부 정책이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시 주석의 공동부유 구호가 중산층 이상 중국인들의 ‘차이나 엑소더스’를 자극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계 부동산 기업 주와이는 향후 2년 내 70만 명 이상의 중국인이 중국을 떠나 해외로 본거지를 옮길 것으로 예측했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는 올해 1500억달러의 본토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으로 봤다. 중국 정부가 ‘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를 유발하는 정책을 지속할 경우 중국 경제가 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길은 더 험난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