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11번가 주요 부서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의 핵심 의제는 공동 경영이다. SK 측은 11번가와 큐텐을 합병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큐텐 주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큐텐을 공동 경영하자는 의미다.
이 같은 거래는 큐텐이 티몬, 위메프를 인수할 때 사용했던 거래 구조와는 차이가 크다. 티몬, 위메프 매각은 각각 두 회사에 투자한 주요 재무적투자자(FI)인 앵커파트너스와 IMM인베스트먼트가 주도했다. 이들은 티몬과 위메프의 IPO(기업공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인물이 구영배 사장이다.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경험이 있는 구 사장은 티몬과 위메프 경영권을 넘겨주면, 이에 대한 댓가로 큐텐 지분을 앵커파트너스, IMM인베스트먼트 등에 나눠주기로 했다. 큐텐을 나스닥에 상장시킴으로써 FI를 비롯해 티몬, 위메프의 창업자에게도 탈출구를 열어주고, 큐텐그룹은 외형을 키우는 ‘영리한 거래’였다. 그동안 큐텐의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 지분을 나눠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의 객관적인 형세만 본다면 큐텐이 협상의 우위에 서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SK스퀘어는 2018년 나일홀딩스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금을 받았다. 11번가의 지분 18.18%(작년 말)를 보유하고 있는 나일홀딩스는 11번가의 IPO가 약속된 시한 내에 실패할 경우 11번가의 경영권을 포함해 보유 지분을 동반 매각할 수 있는 권한(드래그 얼롱)을 갖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약속한 기한이 올해 9월 말까지였다”며 “투자자에 지연 이자까지 지급해야 할 SK스퀘어로선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큐텐 쪽에서도 11번가는 놓치기 아까운 대어다. 11번가를 품을 경우 큐텐은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유의미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올라설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티몬과 위메프의 거래금액은 각각 3.8조원, 2.4조원에 불과하다. 큐텐 군단 중 하나인 인터파크커머스의 거래액은 7000억원에 머물렀다. 3개 회사를 합해도 7조원에 못 미치는 규모다.
구영배 사장이 협상의 끈을 놓치고 있지 않은 건 단순히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11번가를 품으면 큐텐은 SK그룹이라는 든든한 후원군을 얻을 수 있다. SK그룹 입장에서도 통신(이동통신), 모빌리티(티맵)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e커머스와의 연계가 필수다.
SK그룹과 아마존이 전략적 제휴 관계라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SK스퀘어와 큐텐의 전략적 제휴가 현실화한다면 아시아에서 유독 힘을 못 쓰고 있는 아마존도 그동안 미뤘던 한국 투자를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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