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장과 통장

입력 2023-10-25 17:54   수정 2023-10-26 00:55

전국의 시골 마을에 스피커가 설치된 건 1970년대 전기가 들어오고 나서였다. 이 덕분에 마을 이장은 공지사항 전달을 위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거나 목청껏 외치지 않아도 됐다. 동네마다 이장 목소리가 확성기로 쩌렁쩌렁 울렸다. “아, 아, 마을 이장입니다.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오는 목요일 저녁 6시에 마을회의가 있으니 회관으로 모여주세요.” 지금은 마을방송도 스마트 시대다. 이장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각종 공지사항과 마을 소식 등을 전하면 집에 설치된 수신기나 휴대폰으로 이를 듣는 시스템이다. 이장은 시간, 장소에 관계없이 공지사항을 전할 수 있어 좋고, 주민들도 공지사항을 놓치는 일이 없게 됐다. 무선방송장치를 도입해 마을 스피커 대신 집집마다 수신기(확성기)를 갖춘 곳도 많다.

읍·면·리의 행정 책임자인 이장과 도시지역 행정동 책임자인 통장은 행정조직의 최말단에 있지만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법규로 명시되진 않았지만 책임과 역할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민방위 훈련 및 소집 통지서 전달, 주민등록과 전입신고 내용의 사실 여부 확인, 전시 생필품 보급 등 각종 법령에 따른 업무가 다양하다. 주민의견 수렴 및 전달, 주민 화합 단결과 이해 조정, 정부 홍보물 전달과 각종 통계조사 업무 지원, 농지 경작·가축 사육·국공유 재산실태 등 사실확인 업무, 재해 예방과 대응, 저소득층과 위기가정 등 복지 사각지대 발굴도 이들의 몫이다.

일이 생각보다 고되다 보니 이장·통장 구인난을 겪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한다. 전남의 경우 이장·통장 10명 가운데 7명이 60대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70대도 23%나 된다. 1990년대 이후 ‘반장’은 유명무실해졌지만, 통·반장이 주민통제 도구로 여겨진 과거의 경험도 한몫하는 듯하다. 통신비와 건강검진비 지원 등 이장·통장 처우 개선에 나선 지방자치단체도 여럿이다. 국민의힘이 현재 30만원인 이장·통장의 기본수당을 4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내년 총선 공약으로 내놔 ‘퍼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 이장·통장 9만8639명의 기본수당을 10만원 더 주려면 연간 1381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고물가 시대에 이들의 역할에 비해 과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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