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1조원씩 버는데"…허탈한 현대차 주주들 [노정동의 선넘는 車 이야기]

입력 2023-10-28 20:00  


"한 달에 1조원씩 버는데 어떻게 더 잘합니까. 이 정도 주가면 저주 아닌가요?" (현대차 주주 A씨). "차라리 도요타 주식을 살 걸 그랬어요" (현대차 주주 B씨).

최근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대차 주식을 두고 종목토론방에서 나오는 주주들의 아우성이다. 실적, 영업이익률, 향후 경영 전망 등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현대차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도 불구하고 주가만 유일하게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는 게 주주들의 불만 요지다.
"SUV·친환경차 등 '비싼 차' 많이 팔아"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대차 주가는 지난 5월 전고점 대비 15.5% 하락했다. 이 기간 코스피 하락률(13.6%)보다 더 떨어졌다. 실적에서 '쾌속질주'를 하고 있는 현대차지만 딱 1년 전에 현대차 주식을 산 사람이라면 7.0%의 수익률을 거둔 정도다.

반면 도요타는 실적이 고스란히 주가에 반영되면서 올해 내내 주가가 '고공행진'이다. 1년 전에 도요타 주식을 산 사람이라면 28.0%의 수익률을, 올 연초 대비해도 26.3%의 상승률이다. 지난 9월에는 1949년 상장 이후 가장 높은 주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두 회사는 올 들어 주주들이 환호할 만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현대차는 올 3분기(7~9월) 전년 동기보다 146% 늘어난 3조821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평균을 내보면 지난해 4분기 이후 12개월 연속 월(月) 1조원 이상의 영업흑자를 낸 것으로, 3분기 기준으로도 역대 최고 영업이익이다.

이 기간 기업 수익성 평가의 핵심 지표인 영업이익률은 9.3%를 기록하며 테슬라(7.6%)를 제치고 글로벌 완성차 업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10% 초반대 영업이익률을 보이는 벤츠, BMW와 유사한 수준이다.

현대차의 호실적은 '비싼 차' 판매가 늘었기 때문이다. 올 3분기 현대차 글로벌 판매량은 104만5510대인데, 지난해 같은 기간(102만5010대)과 비교했을 때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진이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판매 비율이 지난해 50.6%에서 올해 54.7%로 늘었고, 고급차인 제네시스 비율도 4.9%에서 5.1%로 높아졌다.

현대차의 올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1조6524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9조8198억원)을 이미 넘어선 데다 4분기 역시 호실적이 예고된 상태다. 반도체 업황이 부진한 삼성전자를 꺾고 올 들어 3개 분기 연속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도요타도 연초에 올해 영업이익 목표로 3조엔(약 29조원)을 제시했다. 3조엔은 일본 기업 역사상 최초다. 지난 2분기엔 일본 기업 중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조엔(약 1조590억원)을 뚫었다. 일본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올해 도요타 영업이익 예상치를 4조엔 이상으로 올려잡았다.

도요타 역시 단가가 비싼 친환경 차량과 럭셔리급 차종 위주의 판매 믹스 개선이 호실적의 배경이다. 도요타가 지난 2분기에 판매한 차량 중 34.2%는 하이브리드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배터리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등 전동화 모델이 차지했다.
"전기차 비중 8% VS 0.5%…현대차가 더 위험"

전문가들은 현대차와 도요타 모두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주가가 엇갈리는 이유로 전기차 비중을 꼽고 있다. 향후 전기차 시장의 급격한 둔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도요타의 전기차 판매 비중이 낮아 위험이 덜 하다는 얘기다.

전기차 성장 둔화는 이미 시장에서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올 2분기 미국 전기차 재고만 9만2000대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2분기 대비 4배 수준이다. 생산은 됐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고 창고나 하역장에 그대로 쌓여 있다는 얘기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미 올 연말까지 전기차 보조금을 늘리기로 했고 현대차와 기아는 주요 부품 협력사에 전기차용 부품 생산을 줄여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현대차 총 판매 중에서 전기차 비중은 현재 8% 수준이다. 오는 2026년 18%, 2030년 34%로 확대할 계획인데 수요가 공급을 따라갈 수 있겠느냐가 시장에서 던지고 있는 의문이다. 당장 내년 하반기부터는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이 완공되면서 북미시장에 본격적으로 전기차를 쏟아낼 예정이다.


반면 도요타는 올 2분기 기준 전기차 판매 비중이 1%도 안된다.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산업구조 변화에 주주들이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요구하면서 속속 순수 전기차 모델을 선보이고는 있지만 양산에는 느긋하다.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차는 전체의 35%가량을 판매하고 있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전기차(EV) 시장이 둔화하고 가격 경쟁이 나타나면서 밸류에이션(평가가치)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며 최근 기업분석보고서에서 현대차 목표주가를 33만원에서 29만원으로 내렸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업체 간 경쟁 심화로 인해 인센티브 지급액이 상승하고, 순수전기차(BEV) 시장 내 현대차 점유율이 줄어들고 있어 판매량과 판매가격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며 목표주가를 26만원에서 24만원으로 낮춰잡았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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